'낀 소득층' 살림 팍팍 … "세금 더 내라니 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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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의 중견 기계업체에 근무하는 김모(36) 과장의 연봉은 4300만원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중산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금과 건강보험료·국민연금 등 이것저것 떼고 나면 월 300만원가량을 손에 쥔다. 이 돈으로 전업주부인 부인과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의 생활비, 그리고 부모님 용돈을 댄다.

 요즘 그의 최대 고민은 치솟는 전셋값이다. 대출을 받아 얻은 전세 재계약이 곧 닥치기 때문이다. 주변 시세를 감안하면 최소 5000만원은 더 올려줘야 하는데, 마련해 놓은 돈은 이에 턱없이 못 미친다. 대출 한도에 걸려 은행에서 돈을 더 꾸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가 비싸더라도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려야 할 판이다. 김 과장은 “생활 형편으로 보면 영락없는 서민인데, 정부에서 제공하는 서민금융은 소득 제한에 걸려 활용할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고소득자, 자영업자에 앞서 세금을 더 걷겠다고 나서니 분통이 터졌다”고 말했다.

 김 과장과 같은 연봉 4000만~5000만원대 직장인은 정부 추계로 112만 명. 그 전형은 30대 중반 중견기업 과장, 중소기업 차장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에 대한 반발을 주도했던 소득층도 이들이다. 결국 13일 정부는 이들을 세금을 더 내는 대상에서 뺐다.

 연봉 정보 사이트 ‘페이오픈’의 염정호 부장은 “내 집 마련과 자녀 양육으로 급증하는 경제적 부담을 짊어진 층이자 같은 또래의 전문직, 대기업 직원과 갈수록 벌어지는 소득 격차에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계층”이라면서 “소득기준으로는 엄연히 중산층이지만 스스로 서민이라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제개편안이 강한 저항에 직면했던 것도 결국 이런 정서를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애초 중산층 개념을 너무 자의적으로 넓게 잡은 게 문제”라면서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에 비해 그간 꼬박꼬박 세금을 내왔는데 ‘다시 봉이 됐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이들의 반발을 부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산층과 서민 사이 ‘낀 소득층’인 이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주범은 전셋값 상승과 급격히 늘어나는 생활비다. 미래를 위한 목돈 마련이 시급한 때이지만 저금리에 변변한 수단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도 이들의 고민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다.

  세제개편의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달라진 중산층 ‘체감 기준’에 맞춰 정책 체감도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의 설문에선 응답자의 44%가 연수익 7000만원 이상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답변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학계에서도 현재의 중산층 기준이 과소평가돼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면서 “단순히 소득 기준이 아니라 거주 지역, 귀속감 등 문화적 요인을 고려한 정교한 정책 구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민근·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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