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TV 중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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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새 며칠 동안 JAL기 사건으로 온통 야단들이었다. 신문은 물론 「라디오」·TV등 모든 「매스컴」이 총동원해서 부산을 떨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거국적으로 떠들어대야만 하는가?
미친개 한 마리가 집안에 뛰어든걸 가지고 야단법석을 떠는 거나 다름이 없다. 물론 사건은 사건이다.
그러나 자기 몸을 패어가면서 까지 「인도주의」를 내세우고 그렇게까지 무한소모 해야할 만큼「라디오」나 TV는 너무했다.
비정스럽고 야멸스러운 정도로 냉랭한 일본 보도진의 반영에 비추어 우리는 너무나 인심을 쓴 것 같다. 지나친 선심은 굴욕을 낳는 악덕이다. 어딘지 취약한 바탕이 있을수록 분에 넘치는 선심을 쓰는 법이다. 좀더 냉정히 일본 여론의 움직임을 살펴가면서 그들의 변화에 따라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치마폭 넓은 여자가 제 집안 일은 제쳐놓고 사당파리 모양으로 남의 일에 무턱 덤벼들기 잘 하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JAL기 사건에 대한 「라디오」와 TV의 지나친 보도 소모는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더구나 일본의 반영으로 볼 때 아니꼬울 정도를 넘어서 경악심 마저 복 바쳐 오른다.
이 땅이 누구의 땅이기에 그들의 난동에 대해 이토록 거국적(?)으로 대해야만 하는가? 그렇게 입버릇 하듯 떠들던 주체성은 어디로가 그 애숭이들 난동에 휘말려들어 정신을 못 차리고 야단법석들인가 말이다. 경쟁심은 좋다. 정열도 좋다. 그러나 이성과 냉정을 잃은 지나친 동정은 오히려 보이지 못할 치부를 드러낸 느낌이 짙다.
그 끔찍한 KAL기 납북 사건이 아직도 우리 머리 속에 가시 박혀 고통을 주고 11명의 우리 동포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때에 그렇게까지 소란을 피우는 당국자나「매스컴」진영의 무감각(?)한 처사는 심통할 일이다.
내 살을 베어서 까지 남을 도와주는 지나친 선심, 그것을 일인들이 얼마나 알아 줄 것인가?
자기나라의 명예와 독립을 존중하고 주체의식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JAL기 사건에 대한 지나친 보도 선심은 「라디오」나 TV당사자들이 다 같이 한 번 조용히 자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이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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