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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돌이의 자유 - Pi로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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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나는 파이입니다. 부커상을 받은 소설 『파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죠.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에서 호랑이와 함께 227일간 태평양을 건넌 인도 소년이라고 하면 많이들 알 겁니다. 계절이 두 번은 바뀔 동안, 두어 평 구명정에서 리처드 파커(호랑이)와 극단의 동거를 하며 동물의 심연을 봤습니다. 이후 캐나다에서 동물학·종교학을 전공하고, 종교학과 교수가 돼 알게 된 건 ‘동물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죠.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입니다.

 포획된 멸종위기종. 불법으로 거래된 뒤 동물원에서 쇼를 했다죠. 선의의 정치인이 제돌이를 자유롭게 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결국 제주 앞바다로 방사됐고요. 무리와 함께 있는 제돌이(등에 1번이 크게 쓰여진)가 발견돼 생존 가능성이 커졌군요. 포획→훈련→쇼→적응훈련→방사→관찰→관여→또 관찰…. 탄생만 빼곤 대부분 인간의 간섭을 받는 셈이군요.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동물은 야생이라야 행복하다. 사악한 인간에 사로잡혀 감옥에 갇히면 동물의 행복은 끝나버린다. 그들은 언제나 달아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동물은 굉장히 보수적이죠. 언제나 똑같길 바랍니다. 동물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물학적 균형을 이룬 자기 영역’, 즉 집입니다. 적을 피하고 먹이를 얻을 수 있는, 본능대로 생존할 수 있는 곳. 영역이 결정되면, 그게 야생이 아닌 동물원이라도 동물은 갇혀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집만 한 곳은 없다’. 이는 동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한국인은 제돌이의 집을 두 번 빼앗았습니다. 2009년 바다에서 끌어내 동물원에 넣음으로써, 2013년 동물원에서 끌어내 방사함으로써. 4년 전 제돌이는 고통스러운 적응의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그리고 새집을 얻었겠죠. 제돌이와의 교감을 얘기한 사육사 박상미씨와 그 둘 사이의 자기 영역. 하지만 제돌이는 또 집을 잃었습니다.

 반달곰 수십 마리가 10년에 걸쳐 지리산에 방사됐습니다. 종(種)의 재건을 위해서죠. 새끼곰이 드디어 야생에서 태어났다고 환호하더군요. 그 성취가 이뤄지는 사이 십여 마리의 곰이 폐사했죠. 지리산 곰을 복원하기 위해 2004년 처음 방사한 곰은 러시아산이었습니다. 종이 같으니 지리산이 집이어도 괜찮을 거라고 결론 낸 건 정당한 일인가요.

 제돌이와 이름 모를 반달곰, 개체 하나하나의 자유를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자연보호와 동물학을 총동원해 정당화한 건 인간 자신뿐인지 모릅니다. 파커와 함께 있던 태평양은 완벽하게 넓고 완전히 개방된 곳이었죠. 하지만 어떤 감옥보다 폐쇄되고 결핍된 곳이었습니다. 넓은 곳으로 내보낸다고 자유를 얻는 건 아닙니다. 난 돌고래쇼를 옹호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자유에 대한 어떤 환상이 제돌이를 해치지 않을까 걱정됐을 뿐입니다. 내가 그 환상을 깨지 못했다면, 파커에게 무참히 잡아 먹혔겠죠. 파커도 곧 죽었을 거고요.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