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계속』에 의의|양독 정상회담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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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에르푸르트(동독)20일 AP동화】동-서독 정상회담의 결과는 예상했던 이상으로 좋았다. 이것은 극적이고 때로는 떠들썩 했던 일련의 사태에서「빌리·슈토프」수상이 이끄는 동독 대표단과 회담한 서독대표단의 측근소식통이 동-서독 정상회담의 결과를 신중히 검토한 끝에 내린 평가이다.
「콘라트·알러스」서독정부 대변인도 이같은 평가를 그대로 반영하여『「에르푸르트」회담의 가장 중요한 일은 대화를 계속한다는 점이었으며 이것이 성취됐다』고 말했다.
이제 나들이를 할 차례는「슈트프」이며 그는 5월21일「빌리·브난트」서독수상의 초청으로 서독의「카셀」로 가서 제2차 동-서독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 제2차 회담이 끝난후에야 다음에 어떤 일이 있을지 지금보다 더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정상회담이 끝나면 그때까지 일어난 사태를 면밀히 검토할 수 있도록 상당한 기간 회담없는 공백기가 뒤따른후 정부수반(수상)급 이하의 수준에서 회담이 재개될 것 같다.
「에르푸르프」의 제1차 회담에서 동-서독은 제각기 잘 알려진 각자의 입장을 털어 놓았다. 동독은 서독의 승인을 원한다고 말했고 서독측은 일종의 승인이라고 말해도 괜찮겠지만 무엇을 주든간에 그 대신 분단된 독일의 모든 사람들을 돕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에르푸르트」회담을 둘러싼 사태는 쌍방에 반성할 계기를 주고 있다.
「브란트」수상이 동독땅에 모습을 나타낸 것 만으로서 자발적으로 모인「에르푸르트」군중들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의 폭발을 일으켰으며 이 때문에 동독경찰은 이들을 쫓아 버렸고 군중들은 독일어로『우리들은「브란트」를 원한다』고 외치게 됐다. 그러나 동독측은 재빨리 이에 대항하여「데모」수를 조직하여『「슈토프」만세』를 외치게 했다.
그러나 이것은 동일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에르푸르트」의 주민은 누구나 이것을 곧 알았으며 이제 독일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다.「동독정권이 민족에게 매력이 없고 국민이 통일을 갈망하다」는 동독공산정권을 20년동안 괴롭혀온 망령이 되살아 난 것이다.
동독에서 회담하자는「슈토프」의 초청을 수락한「브란트」수상의 전례없는 처사는 동독인들이 서독에 대한 그들의 진정한 생각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었던 첫 기회가 되었다.
「브란트」수상의 1일간의 여행은 극적인 일과 폭발하는 감격이 충만한 승리의 여행이었으며 동독인들이「브란트」수상에게 호감을 보여 주었다는「뉴스」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 한 젊은「택시」운전사는『군중들 장벽에 쇄도해 갔다』고 외쳤다. 이것은「브란트」수상 개인의 승리였고「에르푸르트」가 위치하고 있는「튀링겐」과 옛 유대를 갖고 있는 그의 사민당의 승리였으며 동독령에 처음으로 서독수상의「이미지」를 남긴 증거였다.
「브란트」수상과「슈토프」는「에루푸르트」회담을 끝내면서 근 2시간동안 단독회담을 가졌다. 여기서 무엇이 토의되었는지는 비밀에 붙여져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독일을 새로운 진로에 놓게했다. 사민당에 동조적인 한 서방신문 편집인은『동독이 앞으로는 결코 오늘과 동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브란트」수상이「에르푸르트」에가 서독인의 갈채를 받음으로써 수많은 동-서 독인의 소망과 꿈이 되살아나기는 했지만 서독 역시 달라질 것이다. 25년동안 갈라져 살아왔고 아직껏 분단된 이땅의 사람들에게는 이번 이야말로 길이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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