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한 국회 정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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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는 18일 국회에서 합동의원 간담회를 열었다. 이 회합에서 여·야 의원들은 KAL기 납북사건 및 북괴의 대일 세균발주사건 등에 관하여 정부측으로부터 진상 해명을 듣고 일련의 대책수립을 토론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북괴의 악랄한 도발로 국가안보가 크게 염려되는 상황하에서 국회를 정식으로 소집하여 긴급한 안건을 상정, 처리치 아니하고, 간신히 여·야 의원 간담회 형식으로 정부보고를 청취하고, 대 정부 질의응답을 벌임으로써 정부 대책을 규명하게 되었다는 것은 지극히 유감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법에도 없는 여·야 간담회를 열어 가지고 엄중한 시국에 처해서도 국회는 무위태만 하다는 악 인상을 씻으려고 한 것은 국회를 정상화하지 못한 사유에서 비롯한 궁여지책이라 하겠지만, 의회정치의 상도를 벗어난 것임은 물론,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느낌이 짙다. 이처럼 우리 나라 의회정치가 타락을 극하게 된 것은 여·야가 제각기의 당리당략을 고수하고 서로들 상대를 위해서는 일보도 양보할 수 없다는 독선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국가적 견지로 보아 국회의 소집·개회가 꼭 필요한 시기에도 고루한 당쟁 때문에 국회 정상화를 끝까지 외면하고 있으니 우리 나라 국회란 과연 누구를 위해서, 또 무엇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가부터 의문시되는 것이요, 이점 국민의 엄중한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의원은 그들에게 부과된 공적 사명이 무엇인가를 한번, 냉정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KAL기 사건으로 납북되었다가 귀환한 인사들로부터 전해들은 북괴의 비인도적 만행, 상금도 억류 중에 있는 인사들이나, 그 가족들의 비통한 심정, 그리고 북괴의 대일 세균 발주사건 등을 둘러싸고 국민여론이 격앙하고 있는 차제에, 여·야는 정쟁에만 골몰하고 대의민주 정치를 반 항구적으로 부재상태에 방임해 두어도 좋다는 것인가.
우리 나라 정당들에 근대적인 공당성이 모자란다는 것은 식자들이 한결 같이 지적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공당성이 모자란다 손치더라도 국가가 안전하고서야만 정당과 정쟁이 있을 수 있고, 당리당략이 국가의 이익이나 국민의 복지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초보적인 상식마저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국회 비정상화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든가 혹은 여야 어느 쪽에 더 많이 있다든가를 묻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회의 장기에 걸친 기능마비 상태의 방임은 국민으로 하여금 『국회는 있으나 마나하다』는 생각에서 진일보하여『국회는 없어도 좋다』는 생각을 갖게 하리라는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국회의 위신은 도저히 되살아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지금 우리의 의회 정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음을 부정치 못 한다.여·야가 국민의 소리에 허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호양타결로 국회를 정상화한다면 국민은 새삼 국회를 필요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무궤도한 정쟁으로 국회정상화를 계속 이루지 못한다고 하면 국회는 국민이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여·야 간담회 개최를 계기로 여·야는 보다 더 깊숙이 접촉하고 폭 넓게 대화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아 국회정당화의 실머리를 붙잡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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