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체 핵무기 보유 땐 '득보다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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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한국인들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한국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전혀 실익이 없으며 국제사회의 핵 확산 저지 노력에도 정면 배치됩니다.”

 개러스 에번스(69·사진) 호주국립대 이사장은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체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려 하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당하는 등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고 강조했다.

 에번스 이사장은 호주 자원·에너지장관, 교통·통신장관, 검찰총장에 이어 외무장관을 역임한 뒤 2010년부터 호주국립대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국제위기그룹(ICG) 회장과 국제핵확산금지·군비축소위원회(ICNND) 공동 의장을 지낸 핵 안보 전문가다. 그는 자신이 공동 편집한 책 『현 상태의 핵무기』 출간과 관련, 지난 2일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한국 핵 전문가들과 세미나한 뒤 인터뷰했다.

 에번스 이사장은 “『현 상태의 핵무기』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발효(1970년) 이후 핵무기 확산 금지와 핵 군축의 성과를 짚어보기 위해 발간됐다”며 “‘핵 없는 세상’이라는 NPT의 목표는 핵무기 보유국들의 소극적인 참여로 실망스러운 상태인 만큼 이 책이 지지부진한 핵 군축 협상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NPT 체제가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한계를 드러냈지만 NPT 발효 이후 새로 늘어난 핵무기 보유국이 4개국(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북한)에 그친다는 걸 고려하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핵과 관련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북한 비핵화를 포기해선 안 된다. 북핵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갖고 차분하게 협상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에번스 이사장은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세계에서 원전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으나 원전은 훌륭한 에너지원이며, 현재 기술로도 원전의 안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원전 폐기 주장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호주국립대는 1946년 설립부터 연구에 특화된 대학으로서 ‘연구와 관련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전통이 과학·의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 6명을 배출한 원동력이 됐다”며 “대학과 주변 지역 커뮤니티가 유기적으로 결합돼 연구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호주국립대는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의 세계 대학 평가(2012~2013)에서 37위를 차지했다. 국내 대학 중 포항공대(50위)·서울대(59위)·카이스트(68위)·연세대(183위)만이 200위 내에 들었다.

글=정재홍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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