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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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여객열차들은 무슨 명절만 되면 [마의 열차]로 변한다. 서울발 부산행 어느 완행열차 [스프링]이 내려앉아 1시간이나 연착을 했다. 객차1량의 정원은 88명. 여기에 2백여명의 여객을 태웠으니, 사고도 날만하다.
귀성열차의 초만원은 새삼 도시폭발을 실감하게 해준다. 서울행 열차와 서울발 열차는 그 좋은 대조이다.
서울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도시처럼 되어간다. 해마다 30만명의 서울시인구가 증가하는 현상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증가율은 무려 13%를 기록한다. 자연증가를 제외해도 20만명씩의 이주자가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서울역의 시설은 서울이 하나의 조그만 시일 때의 그대로이다. 열차수가 증가해도 미처 그 시설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비좁고 답답하다.
그런데도 당국은 해마다 [마의 열차]를 운행해야 되는 [마의 행정]을 되풀이하고 있다. 우선 발차역을 지역적으로 조절해도 지금의 혼란은 조금 덜 수 있을 것이다. 호남선은 용산역에서, 경부선은 영등포역에서 시발하는 식의 안도 신중히 검토해 볼만하다. 굳이 모든 열차가 서울역에서 떠나야할 까닭은 없다.
이번 구정 전야, 한 여인은 갓난아기를 업고 [플랫폼]을 허둥지둥 뛰어가다 몇 번을 넘어졌다. 서울발 목포행 급행을 타고 가던 그 여인은 영등포역을 지나며 아기에게 젖을 물리려고 했다. 포대기를 열자, 그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아기는 파리한 얼굴빛에, 입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아기는 끝내 대전역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귀향길이 죽음의 길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 여인은 이 완행열차를 타려고 새벽4시쯤 아침밥도 못 먹고 역으로 달려왔었다. 이 열차의 발차시간은 낮11시55분. 그래도 그는 좌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떼밀려 다녔다고 한다.
악몽 같은 일이다. 교통부당국은 열차행정을 곧 [컴퓨터]화하리라고 전한다. 그러나 [컴퓨터]화에 앞서 [휴메인]화에 더 깊은 관심과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우선 승객이 11시55분 차를 타기 위해 새벽4시에 채비를 차려야하는 것처럼 불편하고 미개한 시간관리는 없을 것이다.
귀성열차의 초만원현상이 열차수입의 증대에만 뜻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열차운행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국고수입만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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