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뒤틀리는 계산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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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결승2국>
○·구리 9단(1패) ●·이세돌 9단(1승)

제8보(104~119)=흑▲가 놓이며 백 대마에 대한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하고 화려한 거래였습니다. 이제 계가는 어찌 돌아갈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104, 106이 떨어집니다. 수가 있는 걸까요. 다 죽은 게 아니었던가요. 구리 9단은 그래서 시원스럽게 대마를 내준 것일까요. 검토실이 부산해졌습니다.

 깨끗하게 잡으려면 ‘참고도1’ 흑1로 치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백2 다음 4에 두는 수가 있습니다. 이 4가 사활의 급소여서 7로 잡으려 해도 8, 10의 수순으로 살게 됩니다. 대마란 참으로 불사(不死)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긴 강 어딘가에 생명이 깃들이듯이 중앙 쪽 꼬불꼬불한 곳에 집이 숨어 있었습니다. 결국 107로 후퇴하는 이세돌 9단입니다. 속으로 장탄식을 했겠지요.

 이제 ‘참고도2’ 백1에 두면 꼬리는 삽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지요. 예상했던 계산서가 뒤틀리고 있습니다. 108, 110도 따끔따끔합니다. 112의 선수도 예정된 것이지만 참으로 쓰라립니다. 이처럼 자꾸 통증이 느껴지는 건 바둑이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대마의 꼬리가 살아가는 맛이 남는 바람에 계산서가 어긋난 탓입니다.

 심란한 마음 달랠 길 없는데 구리 9단이 114로 파고듭니다. 이곳은 조금만 늦추면 수가 나는 곳이지요. 흑은 계산도 빠듯한데 조금이라도 수를 내줄 수는 없습니다. 해서 115, 117로 버팁니다. 이러면 당장 수는 없지만 맛은 고약하지요.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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