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선교사·목사로 … 한국사랑 6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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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평생 해외선교에 힘쓴 미국인 말린 베이커(82·사진) 목사는 오른쪽 종아리에 커다란 흉터가 있다. 커다란 살점이 통째로 떨어져나간 자리다. 그는 6·25참전용사다. 전쟁 막바지인 1953년 4월 전선에 투입돼 정전(7월 27일)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6월 말, 악명 높은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 전투에서 지뢰를 밟았다. 부상은 컸다. 회복 중 전쟁이 끝났지만 그는 2년 반 후인 56년 초 한국에 돌아왔다. 이번엔 선교사 자격으로였다. 이렇게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77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21년간 이땅에서 선교사로, 목사로 활동했다. 대전에 교회를 세워 12년간 담임목사를 맡기도 했다.

 이런 베이커 목사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2005년 이후 8년 만”이라고 했다. 경기도 용인의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와 경기도가 초청한 5개국 참전용사 96명과 함께다.

 26일, 판문점을 다녀온 베이커 목사를 만났다. 그는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위해, 특히 한국이 통일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베이커 목사의 한국과의 인연은 목회활동이 다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서 아들 넷을 낳았는데, 그중 첫째, 넷째를 병으로 잃었다”고 했다. 베이커 목사는 곧 한국 여자아이 둘을 입양했다. 이젠 중년이 된 털리사(53)와 태미(46)다. 모두 생후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무렵 입양했다고 한다.

 베이커 목사는 “때문에 미국에 있을 때도 한국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을 위해 내 인생을 바쳤고, 한국에서의 생활은 내 인생의 모험이었다”고도 했다.

 그는 미국에서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 전국의 교도소를 돌며 수감자들을 상대로 목회활동을 한다. “형편이 된다면 한국에 자주 오고 싶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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