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산에 올라 살림걱정 털고 속리산 눈맛에 부푼 가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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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눈이 쌓인 산록, 시야엔 온통 흰색만 묻어오는 설산에서 매큼한 조기찌개를 끓여먹고싶다.
이른봄 창틈에 스며드는 훈풍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이종희여사는 겨울이면 산에서 풍기는 눈의 냄새를 맡는다. 마구 달려가 누리고 싶은 겨울산의 즐거움에 가슴이 설렌다.
『남편(이숭녕박사)하고는 20년 이어온 산친구지요.
등산을 즐기는 우리부부는 우선 몸이 건강하고 또 정신이 건강하고…. 집에서는 남편 원고를 정리하고 참고서적을 찾아드리는 비서역할을 톡톡히 하지만, 산으로 나서면 우리는 다정한 친구가 되지요.』
산에만 가면 음식 솜씨를 발휘하는 남자들이 많지만 이박사는『물길어다주는것』으로 그친다. 「버너」의 강렬한 불꽃에 익혀내는 불고기, 특히 겨울철의 생선찌개를 부부는 집에서와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즐긴다.
『산에 다니는 일을 계속하다보면 일상생활이 등산을 단위로해서 이어지는 기분이에요. 산에 오를 때의 그완벽한 해방감, 산을 내려와도 그 해방감은 얼마간 계속되어 머리속이 활짝 개지요. 그러나 다시 생활의 압력이 머리를 아프게하면 또 산으로가 해방을 누리고…』
겨울산중에서 이여사는 설악과 도봉을 좋아한다. 도봉의 겨울맵시는 30번도 더봐 정이 들었지만 물론 다른 낯선산도 겨울 모습을 보기만하면 곧 사랑하게될 것을 이여사는 알고 있다.
『이번 겨울엔 남편이 속리산에 데리고가주신댔어요.』 혹한이 휩쓰는 속리산산록을 오를 때의 목이 타는 듯한 갈증. 눈 한움큼을 입에 넣을 때의 그 단맛을 이여사는 벌써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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