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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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세기 말에 일본에 와서 살다가 일본여자와 결혼하고 일본에 관한 저서로 남긴 애란인에「라프카디오·한」이라는 낭만객이 있었다. 그의 수필에 『제퍼니즈·스마일』이라는 것이있다.
일본 황빈에서 일본하인을 하나 데리고 살게 됐는데 그 하인이 하루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찾아와서는 긴한 청이 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결국2,3일 휴가를 달라는 것이 그 긴한 청의 내용이었다. 만면의 웃음이며, 기뻐하는 거동으로 미루어 필경 무슨 경사가 생긴 것으로 알고, 휴가가 필요한 이유를 물었을 때 그 하인의 대답이 기상천외였다는 것이다.
여전히 검푸르한 얼굴에 가뜩 미소를 띠고는 왈, 『어제 저의 아버지가 돌아 가셨습니다. 「아이 앰 소리」』. 자기 잘못으로 부친이 별세했을 리 없으니 『아이 앰 소리』는 당치 않은 소리지만, 주인인 「라프카디오·한」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었던 것은 바로 그하인이 그토록 슬픈 사연을 고할 때, 그 얼굴을 떠나지 않던 웃음이었다.
이와같은 경우 얼굴에 웃음을 띠는 것은 서양인의 눈에는 거짓 말이나 불성실이 표시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을 무척 좋아한 그 애란인에게도 일본인의 웃음만은 끝내 불가사의한 신비였다. 그러나 일인들이나 우리에게는 실상 신비도 아무것도 아닌 일종의 「에티케트」에 불과하다.
웃어른한테 꾸지람을 들었을 때에도 상을 찌푸려서 불만을 표시하는 대신 우리는 미소로써 반성과 승복의 뜻을 표현한다.
서양인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을 만한 경우에 우리는 곧잘 웃는 버룻이 있다. 문화의 차이는 이런데에도 있다. 며칠전 서울시경은 교통순경이 단속을 할땐 웃으면서 범칙자를 다루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외인운전사를 다를 때도 그래야 하는건지, 또 혹은 교통순경의 미소가 교통지옥을 더하게 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는지는 궁금하다.
그러나 웃음은 짜증보다는 낫다. 공인과 사인과의 거래에서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하도 오래돼서 언제 우리에게 만면미소를 띤 때가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지경이다. 문화의 동서가 무슨상관이냐. 서로웃고 오가는 인정과 친절을 즐기는 백성이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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