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이슈: 국과수 50돌] 유전자 분석기술은 세계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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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 빠진 연쇄살인 사건. 범죄 현장을 살피던 한 경찰이 머리카락 한 올, 피 한 방울을 발견한다. 용의자의 유전자(DNA) 정보를 찾아낸 감식반원이 범죄자 수십만 명의 유전자 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DB)를 검색해 용의자를 '족집게처럼' 집어낸다.

유전자감식기법은 첨단 과학수사의 대명사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채취.분석은 가능하지만 대조해 볼 DB가 없어 수사가 곧잘 벽에 부닥친다. 인권침해 논란이 있어 범죄자 유전자의 DB화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면수 국과수 유전자 분석과장은 "DNA 분석 기술은 선진국에 뒤질 게 없다"면서도 "범죄인들의 유전자 정보가 축적된 DB를 만들 수 없어 고가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과수가 확보하고 있는 유전자 DB에는 2000년 이후 미해결 사건의 현장에서 발견된 3000여 건이 담겨 있을 뿐이다. 미국의 경우 1998년 연방정부가 나서 각 주의 경찰이 수집한 흉악범죄자의 유전자 DB를 실시간으로 연결, 관리해 우리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검찰과 경찰은 지난해 말부터 '유전자 감식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기 위해 협의 중이다. 방화.살인.강간.성폭력을 저지른 수형자와 구속 피의자의 구강 내 상피세포를 수집해 '범죄인 유전자 정보 은행'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연간 2만~3만여 건의 유전자 정보가 수집될 전망이다.

범죄자들의 DNA 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크다. 유전자 정보가 외부로 유출돼 악용될 수 있고,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94년에도 법무부와 경찰이 각각 유전자정보은행 설치법안을 마련했다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반발에 밀려 무산됐다. 지난해 7월 살인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 구로경찰서가 중국동포 140여 명의 모발과 구강세포를 무더기로 채취했다가 시민단체의 항의를 받았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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