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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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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음협이 신음악8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마련한 재l회 「서울음악제」(10월27일∼11월2일)는 우리악단의 현황과 역량을 총결산한 것이라는 점 이외에 순전히 우리의 신작만으로 엮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악단의 관심을 모았다. 종묘를 무대로 잡은 전야제를 서막 (제례악)으로 펼쳐진 이 음악제는 김달성씨의 「오페라」 『자명고』를 「피크」로 막을 내렸는데 그사이에 가곡·실내악곡·관현악곡·합창곡 발표를 끼워 전례 없었던 푸짐한 행사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화려한 외양에 비해 내용이 알찬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 같다. 10명의 작곡가가 참여한 가곡부문만 하더라도 화제에 오를만한 작곡가는 나운영 김진균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씨의 작품은 세면된 기법과 빈틈없는 구성에서 모범을 보였고 김씨의 『강강수월래』는 안이한 토속에서 탈피한 흔적을 엿보여 앞날을 기대케 했다.그러나 크게 문제될 작품은 없었다하더라도 실내악부문은 가곡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윤양석씨의 『소나타』는 민속풍의 서정을 바탕으로 통일감있는 기법과 함께 구성에 무리가 없었고, 이성재씨의 「피아노」와 『현악4중주를 위한 협주곡』도 점묘적 기법에다 민속감각을 차분히 깔아 밀도 있는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이영자씨의 『소나타』는 시상의 한계가 좁은 대로 구성이 치밀했으나 감각에 특징이 없는 게 흠이었다.
김성태씨의 『소나티네』 역시 유창한 어법구사에서 「베테랑」다운 관록을 유지했고, 강석희씨의 『「피아노·스케치」2번』은「피아노」의 음색을 음혼과 금속성의 효과로 전자음악에 흡사한 음향을 조작케 하는 등 음색구사에 민감한 면모를 과시했다. 정윤주씨의 『교향곡2번』은 강렬한 작풍으로 일견 호소력이 짙게 보이나 지나친 효과에 이은 음량과다는이작품의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상근씨의 『교향곡 제5번』은 관현악처리에서 노련한 경지를 보였으나 서정의 멋이 약했고 조병옥씨의 『가야』는 현대감각으로 채색된 민속조의 저력을 지녔으나 단조로움을 면치 못했다.
이 음악제를 통해 가장 진취적이요 격조 높은 작품으로 백병동씨의 『「첼로」협주곡』과문제작으로 박재훈씨의 합창곡 『시편』을 들어 마땅할 것이다. 2악장에 비해 l악장은 설득력이 약한 듯 했으나 백씨의 협주곡은 참신한 현대감각과 깔끔한 기법을 겸한 가작이었고 박씨의 작품은 한국적 흥취와 심도를 함께 지녀 민속조의 개발에 일말의 희망을 걸게 했다.반면 김달성씨의「오페라」 『자명고』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역시 큰 것이었는데 그것은 애창될만한 「아리아」 하나 없다는 이유 말고라도 극적으로 육박하는 박력마저 없는 데다 노래를 무시한 금관악기의 남용은 이 작품에 더욱 큰 치명상을 입혔던 것이다.
연주 면에서는 오현명·박인수·이성균·정진우·서울현악4중주단·서울「브라스·앙상블」·「오페라」의 온규택·주용섭제씨와 서울시향이 호연을 보였다. 이 음악제를 통해 본우리 작곡계 경향은 단연 민속풍을 고취하는데 있는 성싶다.
서양음악이 소재의 고갈로 인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라면 한국창작 음악계의 고민은 소재의 미개발에 있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개발 정신 없이 우리 작품의세계무대 진출은 어려울 것이다.
김기정<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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