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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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월드·컵」서울예선전은 시종장쾌한 게임」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관중들의 정열과 환호를 불러일으킨 「게임」도 일찍이 없었다.
서울전의 「피날래」는 20일 하오의 한­호 대결. 마치 한국 축구의 중흥이 하룻밤사이에이루어진 듯, 이 대결은 열광과 기대와 환상 속에서 계속되었다. 「볼」이 호주의 문전으로 한발, 한발, 다가설때의 긴장, 함성, 또다시 낙망속에서의 돌파, 진격…. 그「리드미컬」한 격앙의 「사이클」은 하나의 예술적인 인간찬가의 경지와도 같았다.
20일「게임」의 극치는 후반전 19분에서 얻은 「페널티·킥」. 이것은 상대「팀」「골」앞불과 11m에서 오로지 「키퍼」하나만을 방비로 하고 차넣는,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전문가에 의하면 이론상 이「킥」의 방어는 거의 불가능하다.
「볼」을 강「슛」으로 찼을 때 「골」에 이르는 시간은 불과 2분의 1초. 이때 이 직격탄을 막는 「골·키퍼」의 행동은 아무리 민첩해야 3분의 2초밖엔 뛰지 못 한다고 한다. 이런상황에서의 「골인」을 기대하는 것은 조금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는 「볼」을 차는 선수의예측, 자신감, 결단력, 그리고 순간적인데 판단력이다.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와르르 무너졌던 경험이 새삼떠오른다. 64년 9월1일 동경「올림퍽」농구출전 「요꼬하마」예선전에 「게임」종료1분을 남기고 문현장선수는 「프리·드로」2개를 얻었었다. 이것은 75대76의 긴박한 순간앞에서의 일이다. 그러나 아무일도 없이 1분은 지나가고 말았다.「스포츠」가 주는 최고의 쾌감은 바로 그런 극치에서 벌어지는, 실로처절한 갈등을 극복하는 데있다.
가령 적국의 「골」에 단독「드리블」로 진격한 선수가 「슛」을 앞둔 그 전광석화와도 같은 촌각에서 느낄 고독감, 압박감은 범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조건의 가장 순수한 정화가 아닐까.
드디어 임국찬선수는 「볼」을 찼다. 한호대전은 이제부터 낙조. 「게임」온「휘슬」이 울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게임」의 결과는 결국 우리「팀」의 한계를 시사해 준다. 하나의 「페널티」문제가 아니다.
「볼」을 다루는 경기중, 축구처럼 기술과 체력, 두 가지의 무한정한 소모를 요구하는 「게임」도 없다. 그 승패는 한 개인개인이 발휘하는 능력의 총화이지, 그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영국「보이·스카웃」의 체육교전엔 『축구는 천국에의 길』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만큼 인간의 지력·기력·체력의 「에센스」가 집중된 것이 축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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