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 은행 신설과 연불 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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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수출입 은행을 내년 중에 발족시키기로 결정했다 한다.
정부는 연초에 수출입 은행 법안을 만들고 꼭 수출입 은행을 설립하려했던 것이나, 연불 수출 규모가 미미하여 수출 은행을 시급히 만들 필요성이 없다는 뜻에서 이를 보류하고 외환은행으로 하여금 그 업무를 담당토록 잠정조치 했었다.
정부가 고립을 잠정적으로 보류시켰던 수출입 은행을 내년 중에 설립하기로 다시 방침을 바꾼 것은 수출 증진을 위한 연불 수출의 확대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해마다 총 수출의 5%에 이르는 연불 수출을 추진함으로써 수출 시장을 확대시키고 수출 조건을 다양화 시켜 수출 확대에 기여코자 수출입 은행을 설립하려 한다는 것은 수출 정책으로서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수출입 은행을 설립하고 연불 수출을 촉진시킬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 있으며, 또 독립된 수출입 은행을 신설할 절실한 필요성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별개의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의 실정으로 보아 외자도입을 계속 확대시킬 것은 뻔한 사실이라 할 것이며, 외자도입을 하는 한편 외국에 차관을 공여 해 갈 수 있는 능력이 얼마만큼이나 있는 것인가는 한번 냉정히 마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 외자를 도입하면서 또 한편으로 차관을 공여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하등 이상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경제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외환 사정이나 국내 금융 통화 사정에 상당한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하는 것이다.
외형상의 외환 보유고는 4억8천여만「달러」에 이르고 있는 것이지만, 보유 외환을 담보로 하여 현금 차관을 얻어 오는 식의 부실한 방식으로 늘려 놓은 외환 보유고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외환 보유는 많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불 수출을 확대할 경우, 외환 보유고에 미치는 역량은 매우 클 것이라는 점을 결코 경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연불 수출이 순 국내 자원으로 제조된 기계류의 수출로 이루어진다면, 외환 문제를 수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선박이나 기계류는 수입 수요를 전제로 하는 품목들이기 대문에 외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외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연불 수출은 필연적으로 국내 금융의 확대를 수반한다. 연간 1억8천만「달러」의 연불 수출을 추진하려한다면 해마다 연불 수출 금융이 5백억원 수준 식이나 늘어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규모의 국내 금융 능력은 지금의 금융 통화 사정으로는 허용될 수 없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경우, 국내 금융 통화 사정은 악화되고, 그 여파로 물가·환율 및 수출에 대한 압박 요인도 커지리라고 판단되는 것이다. 이러한 국내 금융 문제는 결국 연불 수출 확대를 위한 일반 수출의 희생을 강요할 가능성조차 대포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 보유·국내 통화 금융 사정 등 연불 수출이 미치는 여파를 고려할 때, 연불 수출의 확장 능력은 극히 제한된 것이라 할 것이며, 따라서 수출입 은행의 신설이 급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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