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광주은행 매각 ‘오리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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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의 첫 단추인 지방 은행(경남·광주은행) 매각이 본격화됐다. 우리금융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15일 경쟁입찰·최고가낙찰제를 원칙으로 하는 경남·광주은행 매각 공고를 낸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확실한 인수자를 찾기 위해 매각 공고 기간을 예년(한 달 이내)보다 긴 두 달로 정했다”며 “공고기간 동안 인수 후보자가 모이면 실사·최종입찰의 과정을 거쳐 연말까지 인수자를 정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방 은행이 우리금융 민영화의 흥행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한다. 잠재적인 인수 희망자가 많아서다. 경남은행 인수 후보로는 BS금융지주(부산은행)·DGB금융지주(대구은행)가 꼽힌다. 광주은행은 기존 유력 인수 후보인 JB금융지주(전북은행)·중국공상은행 외에 최근 농협금융지주·교보생명이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보 지분(57%)과 경영권 프리미엄을 합쳤을 때 매각 가격은 경남은행이 1조2000억~1조3000억원, 광주은행이 1조원가량으로 예상된다. 물론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이 더 뛸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시장에서는 아직 이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경쟁입찰 대신 지역민에게 우선권을 달라”는 경남·광주지역 반발에 밀려 인수 후보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어서다. 경남·광주는 지역 상공회의소 중심의 컨소시엄을 통해 은행을 인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경남은행 인수추진위원회는 13일 창원에서 경남은행 노조, 지역 상공인,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가운데 ‘경남은행 지역환원 촉구 시·도민 결의대회’를 열었다. 최충경 인수추진위원장은 “부산은행·대구은행이 가져가면 ‘경남은행 거래 단절운동’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다른 곳이 인수하면 경남은행에 예치하고 있는 도 금고를 빼버리겠다”고 말했다. 광주상공회의소와 광주은행 노조도 ‘지역자본 우선협상권 부여’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인수 후보 중 누구 하나 적극적이지 않다. “신중하게 접근하겠다. 지역 갈등은 원하지 않는다”(하춘수 DGB금융지주 회장), “광주지역과 상생하는 방향에서 검토하겠다”(김한 JB금융지주 회장)와 같은 반응이다.

 정부는 “특혜는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역 컨소시엄에 우선권을 주는 건 국가계약법상 경쟁입찰 원칙에 위배되는 불법행위”라며 “컨소시엄이 경쟁입찰로 들어오더라도 은행법상 산업자본으로 분류돼 지방 은행 지분을 15% 이상 매수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역민의 반발이 계속되면 지방 은행 매각이 단기전으로 끝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다음 달 매각공고가 나오는 우리투자증권이 오히려 먼저 매각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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