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연해주 고려인들에 한글교육 보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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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연해주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자손 중 상당수가 현지에서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난과 차별 속에서 할아버지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다 일시 귀국한 최황철(崔晃哲.26)씨는 15일 이렇게 말했다.

"현지 고려인들의 주택은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추운 겨울에도 물을 인근 우물에서 직접 길어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난방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전기난로 하나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죠. 제대로 보수를 하지 않은 군부대 막사였던 건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죠."

崔씨는 지난해 7월 고려인돕기운동회 호남본부 사무국장인 어머니 고영자(高永子.54)씨의 권유로 연해주로 건너갔다. 속초항에서 17시간 동안 배를 타고, 다시 자동차로 10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크레모보. 고려인 2,3,4세 30여 가구 1백50여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이들은 구한말과 일제 때 연해주로 건너가 정착했던 이주민들의 자손들로 스탈린 시절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가 소련 붕괴 후 되돌아 왔다.

崔씨가 현지에서 벌이는 활동은 한글 교육, 자원봉사자 유치, 지원물자 배분 등이다. 이밖에도 급한 환자가 생길 때는 한국에서 배운 수지침과 지압술로 응급처치를 하기도 한다.

지난해 말에는 자동차로 서너 시간 거리에 있는 임시 정착촌에 식량을 나눠주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인적이 뜸한 벌판에서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얼어죽을 뻔하기도 했다.

"고려인돕기운동회가 지원하는 월 3백 달러의 활동비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이를 보충하고 있습니다."

그는 몇년 전부터 고려인들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각종 지원과 자원봉사자가 늘어 형편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더 많은 온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이들이 연해주의 넓은 땅에서 농.축산업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을 강조했다.

崔씨는 "한국에서는 쓸모없는 물건들도 고려인들에겐 큰 선물이 될 수 있다"며 "다음달 초 돌아갈 때 많은 것을 가지고 가 조국의 사랑과 희망을 듬뿍 안겨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61-863-5344.

광주=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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