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美 부시여사도 감탄한 요리 솜씨 대물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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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父子)가 힘을 합쳐 최고의 한식당을 운영하는 게 꿈입니다."

서울프라자호텔 한식당 '삼청각 아사달'의 정왈금(54)조리장과 그의 장남 두현(28)씨.

이들은 이달 초 '특급호텔 한식당 부자 조리사 1호'라는 진귀한 타이틀을 얻었다. 아버지 정씨의 뒤를 이어 두현씨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그랜드 힐튼 호텔의 연회주방 한식 담당 조리사로 취업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벌써 17년째 호텔 주방을 지켜온 고참 요리사. 그는 어려운 집안의 6남매 중 장남이었던 때문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고향 전주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한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운 것을 시작으로 조리사의 길로 접어들어 1986년엔 프라자호텔에 당당히 공채로 입사했다.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입을 대지 않고도 손끝으로 맛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요리엔 자신이 있다"며 "아무래도 요리솜씨는 집안 내력인 것 같다"고 말하는 정씨지만 막상 큰 아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학창 시절 공부는 늘 뒷전이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다 사고를 내는 등 무던히속을 썩였던 아들이었기에 차분하고 섬세한 자세를 요구하는 요리에 재능을 보일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 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두현씨는 1999년 보란 듯이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내 가족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이후 대형 한식당들을 옮겨가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갔다.

지난해에는 "요리뿐 아니라 식당 경영도 배우고 싶다"며 신흥대 관광경영학과에 입학, 늦깎이로 대학생활을 시작해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도 했다.

이제 이들 부자의 목표는 온 가족이 힘을 합쳐 국내 최고 수준의 한식당을 세우는 것. 정씨의 어머니와 부인은 이미 고향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꿈을 실현할 기반은 어느 정도 닦여 있는 상태다.

정씨는 "지난해 5월 미국 영부인 로라 부시 여사가 방한했을 때 무슨 음식을 내놓을지 아들과 3일간 고민 한 끝에 가장 한국적인 음식인 비빔밥을 내놔 극찬을 받았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며 "최근 특급 호텔들이 한식당을 폐쇄하는 등 한식이 천대 받는 추세지만 전통의 맛을 살려 한식을 경쟁력 있는 음식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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