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도입 한 달째 음식물쓰레기 종량제,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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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한 주민이 음식물쓰레기를 종량제 전용 봉투에 담아 수거함에 넣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달 24일 오후 강남구 청담사거리 이면도로. 작은 식당이 밀집한 골목에 음식물쓰레기 수거함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수거함 덮개엔 ‘6월 2일부터 음식물쓰레기 종량제 전용봉투 전면 시행’이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이전에도 음식물 수거비로 매달 3만5000원씩 냈는데 이젠 봉투까지 사라는 겁니까.” 국밥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다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해 6월 폐기물관리법 개정으로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를 시행할 근거가 생기면서 전국 지자체가 속속 종량제를 도입하고 있다. 환경부 폐자원관리과 김이광 사무관은 “전국 144개 시·구 중 현재 129곳이 종량제를 시행 중이고 나머지 15곳이 아직 하지 않고 있다”며 “과천시(2016년 시작 예정)를 제외하고는 모두 올해 안에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에서는 현재 서초구 등 2개 자치구가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지자체들은 “음식물쓰레기를 줄여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며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실은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이 구 재정에 부담되기 때문에 이를 덜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금까지 지자체가 내왔기 때문이다.

강남구 한 식당 앞의 음식물 수거함 모습.

 
결국 구가 부담하던 처리비용을 사용자에게 상당 부분 전가하는 셈이다. 음식물쓰레기 처리 비용을 떠안게 된 주민들이 불만스러워하는 이유다. 특히 상인들은 이중과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강남구에서 곱창가게를 하는 김모(44)씨는 “일부러 반찬을 적게 담아내도 손님이 남기는 게 많기 때문에 노력한다고 무조건 음식물쓰레기를 줄일 수는 없다”며 “안 그래도 쓰레기 수거비를 매달 2만9000원씩 내왔는데 여기에 더해 매일 1200원(20L)짜리 봉투를 추가로 사야 해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비용문제뿐 아니라 편의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 봉투 구하기가 어려워 지난번엔 세 번이나 시도한 뒤 겨우 살 수 있었다”고 했다.

 조용수 강남구 청소행정과장은 “식당들은 그동안 수거 대행업체의 수집·운반비용만 냈고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은 구청이 부담해 왔다”며 “올 6월 종량제를 시행하면서 구가 부담하던 처리비 일부를 봉투값으로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가정에서 쓰는 일반용 음식물쓰레기 봉투는 L당 80원이지만 음식점이 쓰는 영업용은 수집·운반비를 빼고 60원에 판매한다는 것이다. 이중과세가 아니라는 해명이다.

 상인뿐 아니라 일반 가정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기존에 음식물 처리 비용을 내지 않았다. 음식물을 수거함에 그냥 버렸다. 그러나 종량제 시행 후 전용봉투를 사서 쓰레기를 담은 뒤 수거함에 버려야 한다. 버리는 무게와 상관없이 봉투를 많이 쓰면 비용이 많이 들고 적게 쓰면 덜 드는 구조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만난 한 주부(43)는 “음식물쓰레기는 바로 바로 버려야 해서 매일 저녁 수거함에 버리는데 가장 작은 1L 봉투도 다 채우지 못할 때가 많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며 “봉투 입구가 좁아 음식물쓰레기를 봉투에 넣을 때마다 손으로 쥐어 직접 옮겨야 해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에 나오는 최소 쓰레기 양이 있으니 전용봉투 덜 쓰자고 쓰레기를 덜 배출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 김모(50)씨도 “지자체가 음식물쓰레기를 줄여 환경을 살리겠다면서 잘 썩지도 않는 비닐봉투를 사용하는 건 오히려 환경을 오염시키는 게 아니냐”며 “진짜 환경을 생각했다면 RFID(무선 주파수 인식장치) 시설을 구 전역에 갖춘 후 종량제를 시행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RFID는 도봉·금천·구로구 등 8개 자치구의 아파트 단지에 설치됐거나 설치 예정인 음식물쓰레기 처리 전용 기계다. 수거함 인식기에 카드를 갖다 대면 덮개가 열려 쓰레기 무게를 자동 측정한 후 가구별로 버린 양에 따라 비용을 내는 방식이어서 따로 봉투가 필요없다. 또 각 가구가 배출하는 양만큼만 돈을 부과하기 때문에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도 크다. 강남구 조 과장은 “RFID 도입을 검토해 봤지만 대당 가격이 200만원대로 비싼 데다 유지·관리 비용도 많이 들어 전용봉투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며 "2015년엔 RFID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일부 주민은 강남구 봉투값이 다른 구보다 왜 비싼지 궁금해한다. 강남구는 송파구와 함께 25개 구 중 가장 비싸다. 다른 구와 비교했을 때 많게는 4~5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중앙일보 6월 19일자 16면). 강남구 관계자는 “구 전체에서 음식물쓰레기가 하루에 250~300t 나온다”며 “이를 기준으로 수집·운반비를 포함한 총 처리비용의 60%를 봉투값으로 충당하라는 환경부 지침을 성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구별로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각 자치단체의 쓰레기 처리비용 방침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송파구는 RFID를 잠실동의 모든 아파트 단지에 설치했다. 그 외 지역 아파트는 동별로 버린 음식물 총량을 처리 비용으로 환산해 나눠내는 ‘단지별 종량제’를 도입했다. 이 방법은 수거함에 음식물을 바로 버리는 과거 방식과 똑같다. 비용 계산 방식만 바뀌었을 뿐이다. 문정동 올림픽훼밀리타운 아파트에 사는 주부 이모(37)씨는 “5월까진 가구당 매달 1500원을 일괄적으로 내왔다”며 “종량제 시행 후에도 버리는 방식에 차이가 없고 처리비용이 어차피 관리비에 포함돼 있어 실제로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초구는 아직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시행에 앞서 처리비용을 정확히 산출하기 위해서다. 김시환 서초구 청소행정과장은 “올 10월에 종량제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60가구 이상 공동주택엔 구에서 RFID 를 설치하고 일반·단독주택은 주민들이 구입한 스티커를 가구별 음식물쓰레기 용기에 붙여 놓으면 수거하는 방식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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