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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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두달 신부」의 하루는 그대로 공백이다. 그이가 돌아오실 때까지 혼자서 방에 앉아 지리한 시간을 보내야 하니 말이다.
신문을 뒤적이고 잡지를 보고 「라디오」를 듣고, 그래도 하루해는 길기만 하다. 직장생활을 하던 탓일까?
이렇게 무료하게만 느껴지고 스쳐가는 시간이 아까운 것은?
『좋아하는 책도 보고 글도 쓰구료.』 심심해하고 따분해 하는 「두달 신부」에게 「두달신랑」님이 위로하는 말씀이다.
하긴 직장생활로 「미스」때 못보던 책을 두달 동안에 많이 봤으니까 공백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따분한 것은 매일반이다. 그것은 시집식구를 모시지 않은 넷째 며느리가 누리는 행복은 고역쯤 될까?
그이가 나가신 후 외출 준비를 했다. 양재학원을 찾아가 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서 배워 두면 내 옷 뿐만 아니라 미래에 태어날 꼬마들의 옷도 내 손으로 예쁘게 만들어 입힐 수 있을 테니까. 왜 진작 이런 좋은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양재학원을 나오며 배시시 웃음을 깨물었다. 실로 오랜만에 써 보던 입학원서를 나는 소녀처럼 부푼 마음으로 했기 때문이다. 즐거운 상념으로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포도위를 나는 경쾌하게 걷고 있었다. <이진숙·주부·서울 서대문구 갈현동 산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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