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이런 정부를 바란다] 재벌 규제 정책엔 '강화 - 완화' 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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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국민들은 분배 불균형 해소에는 합의를 이뤄냈다. 노무현 당선자의 국정 운영 핵심 철학인 '나누는 사회'에 동의를 표시한 것이다. 의약 분업과 주5일 근무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모아졌다. 반면 재벌 개혁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했다.

국민의 91.9%는 '소득 재분배를 위해 고소득자의 세금을 늘려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연령이나 지지 성향에 관계없이 비슷한 의견이었다. 대체로 고소득.기득권층인 전통적 여론 주도층도 87.9%가 같은 입장을 취했다.

정치인(95.9%).언론인(95.3%).공무원(96.0%).교육 연구직(97.6%)에서 '늘려야 한다'고 본 비율이 높았다. 분배의 불균형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에 대한 입장에서도 확인됐다. 국민의 92.5%가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한 일에 비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이로 인해 분배구조도 왜곡됐다는 게 국민의 생각인 셈이다.

의약 분업에 관해서도 응답자의 80.3%가 '전면 재검토' 또는 '상당 부분 개선'을 요구했으며,주5일 근무제도 '단계적.점진적 도입'에 66.8%가 동의했다.

반면 재벌 개혁에 대해서는 '시장기능에 맡기되 불공정 거래를 제외한 나머지 규제를 풀어야 한다'와 '재벌 개혁을 위해 현행 규제의 골격을 유지 또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52.0% 대 48.0%였다.

국민들은 대기업을 자유롭게 두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재벌의 지배구조.경영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대체로 고학력.고소득.고연령층일수록 '규제 완화'지지 비율이 약간씩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평소 견해가 달랐던 이회창(李會昌).노무현.권영길(權永吉)후보 지지자들이 각각 53.9%, 50.4%, 53.8%의 비슷한 비율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응답해 눈길을 끌었다.

전통적 여론 주도층은 재벌 개혁에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규제를 풀자'는 쪽에 65.5%가 손을 들었다. 특히 기업.금융인은 77.1%가 이런 입장에 섰다. 재벌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盧당선자로서는 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국민대 송치영(宋致榮.경제학) 교수는 "국민들이 대기업의 사회적 기여도를 인정하고 경영활동에 대한 자율권 보장에 찬성하면서 동시에 대주주의 기업 지배권과 납세에 대해서는 투명성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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