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못 보는 불편, 그들의 테니스 열정·의지 못 꺾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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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로마 격언이 있지요. 전 틀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은 불편해도 생각은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건전할 수 있어요.”

 라종일(73·한양대 석좌교수·사진) 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회장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테니스 치는 모습을 보면서 신체적 불편이 인간의 의지를 꺾을 순 없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라 회장은 28~29일 이틀간 전북 완주군 우석대 체육관에서 ‘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회장배 제4회 한·중·일 시각장애인테니스 대회’를 개최한다. 중국 장쑤성(江蘇省)과 일본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 소속 선수 각 5명과 인천혜광학교, 전북맹아학교 학생 등 40여 명의 시각장애인 테니스 선수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라 회장이 연맹을 만든 건 우석대 총장으로 일하던 2009년. 고 김교성 부산여대 이사장으로부터 시각장애인들도 테니스를 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국내 장애인들을 위한 테니스 모임을 만들었다. 고 김 이사장 및 정진자 우석대 특수교육과 교수 등과 함께 일본에서 시각장애인용 테니스 라켓과 공을 들여와 우석대를 비롯, 전국 시각장애학교의 학생들을 찾아 전파했다. 중국에도 갔다. 중국 내 시각장애학교를 찾아 장비를 보급하고 경기 규칙 등을 전했다.

 시각장애인용 테니스 공에는 작은 종이 들어있어 소리로 공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코트의 라인은 두께 2mm 정도의 선을 깔아 선수들이 느낄 수 있게 했다. 일본의 한 테니스 선수가 시력을 잃은 후 청각만으로 테니스를 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라 회장의 노력으로 테니스를 즐기는 시각장애인들은 한국과 중국 모두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7명으로 시작한 연맹의 회원 수도 20여 명으로 늘었고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테니스의 매력은 스피드와 파워, 그리고 기술입니다. 시각장애인들과 제가 50여 년 푹 빠진 그 매력을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라 회장은 대학 시절부터 국가정보원 차장, 국제평화전략연구원장, 주 영국·주 일본 대사 등을 지내는 동안 테니스 라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칠순에 접어든 지금도 주 1~2회 테니스를 즐긴다.

 그의 목표는 한국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을 한·중·일 3국과 북한까지 참여하는 아시아 시각장애인테니스연맹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향후엔 국제장애인올림픽 정식종목 등록도 추진한다는 포부다.

 “테니스를 통해 시각장애인들 스스로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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