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던「정복」의 꿈 말없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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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설악산=임시취재반】 설악산조난사고 민·군·경합동 수색대는 3일하오3시쯤 조난자10명중 마지막으로남은 박명수군 (24·서울대문리대지질학과3년) 변명수군(23·서울대문리대심리학과4년) 박은명일병 (21·육본소속)등3명의 시체를발굴하고 18일만에 수색작업을 모두끝냈다.
합동수색대는 이날하오3시30분 마지막3구의시체를 들고 눈발이날리는 「죽음의 계곡」을떠나 신흥사로모두 철수했다.
설악산등반조난자10명의유해는4일아침 한달전 「히말리야」원정훈련등반대 결단식을 가졌던 신흥사의 보제루에서 가족들의 오열속에 입관되었다.
조난자의 유해가 입관될때 박추담스님을비롯한 신흥사스님들의 구슬픈 독경과 목탁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에앞서 3일밤 유족30여명은 밤새워 분향하며 10명의 「알피니스트」를 인부들이 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6명의 인부들은 스님의 지시에따라 시체를 말끔히 씻어주고 머리를 깎아주었는데 이를본 유족들은 모두 목이 메었다.
4일 입관된 유해는 「알피니스트」들이 그리던 「에델바이스」꽃무늬가 그려진 한국산악회기에 다시 덮였고 이중 이희성대장과 김동기부대장의 관은 동방사령부가 마련한 2대의 「트럭」편으로 말없이 서울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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