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조인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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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손자병법」의 제13호「용문」에 보면 기원전 4백년, 중국의「스파이」활동은 아주 다채로왔다. 「스파이」를 그들은 다섯종류로 분류했다. 향간, 내간, 반간, 사문, 생문-. 향간이나 내간은 정보제공로서 말하자면 내통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문장이다.「반간」은 2종「스파이」로 2차대전때 제3국의「보헤미언」들이 곧잘 여기에 종사했다. 「사간」은 적을 기만하기 위해 위장정보를 제공한 목적으로 마련하는 경우이다. 중국인의 천재적인 교활성을 과시한「스파이」활동이었다. 이들은 적에 의해 발각되는 율이 많았으며, 이때는 가차없이 사형을 당했다. 「생간」은 척사와 마찬가지로 생생한정보를 들고 돌아오는 「스파이」를 말한다.
이수근의 경우는 손자병법에도 없는 「신종간첩」임에 틀림 없다.
미국CIA전장관인 「앨런·덜레스」저 「추보의 기술」을 보면, 대개 위장간첩의 경우는 그병의와 충성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교활하고 감쪽같은 고도의 초숙련인들이다. 때로는 자가도취의 경지에서 헤매다 제덫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수근은 그런 경지는커녕, 섣불리 얼렁 뚱땅하다가 꼬리를 밟혔다.
「앨런·덜레스」박사는 소련의「스파이」들이 서방세계에서 대개 실패를 거듭하는 까닭은 이렇게 밝힌다. 여자관계로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거나, 서방세계의 『멋있는 생활』에 말려들어「인간변질」이 된다는 것이다. 이수근이 수다를 떨고다닌 것도 말하자면 변질되어 가는 자신의 초조한 심경을 위장하려는 간계였을 것이다.
그가 위장을 한 모습은 어쩌면 그렇게 간사하고 교활한 인간으로 꾸며졌는지 모른다. 이때 본연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북괴가 만들어낸 모조인간임에 틀림없다. 달리 생각하면 한인간으로서는 그보다 더 비참한 현실은 없다. 최선의 사회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새삼 뼈아프게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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