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반찬의 반란, 한국을 확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조태권
광주요 대표

20세기 말부터 문화소비에 국경이 사라지면서 내수용 산업에서 수출산업으로 급부상한 것이 있다. 바로 음식이다. 이러한 변화를 통찰할 수 있다면 음식문화가 국가 브랜드 경쟁력과 국격을 높이는 핵심적 동력인 동시에 전략적으로 무궁한 자원이며 내수경제의 튼튼한 토대라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해외 관광객 수 1000만 명이 넘는 시대가 열렸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오면 일단 우리 음식을 먹고 마신다. 그런데 우리의 상차림을 대하는 관광객 대부분은 한국 음식을 즐긴다기보다 깜짝 놀라기부터 한다. 먼저 저렴한 가격에 놀라고, 엄청난 반찬의 가짓수에 놀라고, 그 반찬이 따로 돈을 지불하지 않고 그냥 제공받는 서비스라는 데 놀란다. 그리고 식사 후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겨서 버려지는 음식의 양에는 더욱 눈이 휘둥그레진다. 문제는 싼값에 많이 차려내자면 품질과 서비스가 낮아질 수밖에 없고, 남은 반찬의 재사용도 의심하게 되어 신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음식은 밥 한 공기에 반찬 여러 접시가 차려지는 것이 기본이다. 일인분 얼마라는 값이 일단 정해지면 반찬은 얼마든지 더 채워준다. 이런 밥상차림의 문화로서는 수출은커녕 내수산업도 어렵다. 이제 더 이상 이 밥상차림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창조적 파괴’라는 메스를 가해야만 한다.

 2012년 우리나라의 음식물 쓰레기 총 배출량이 530만t이다. 전체 음식물의 약 7분의 1이 버려지고, 그 처리비용만도 8000억원에 달하고, 연간 약 25조원의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반찬을 공짜로 내주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를 방관한다는 것은 자원 낭비요 책무유기다. 반찬을 요리처럼 메뉴화해 원하는 종류를 돈을 지불하고 사 먹도록 해야 한다.

 이는 한국 음식문화의 대혁명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먼저 1인당 평균 7000원이라는 한국 음식에 채워진 가격 경쟁의 족쇄가 풀릴 수 있다. 7000원 밥상은 그 가격에 합당한 밥과 국, 그리고 야채볶음요리 하나를 내고 만약에 원하는 반찬이 있다면 돈을 내고 사 먹을 수 있게 하면 된다.

 그렇게 반찬 하나하나에 값을 매겨 제공한다면 당장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가 줄어들 것이며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이 줄고, 추락한 신뢰도가 개선될 것이다. 그런 판매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각 식당의 주인이나 요리사의 개성이 꽃필 수 있고, 가치 경쟁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작게는 3000원에서, 크게는 50만원까지의 다양한 식사가 고객을 위해 차려질 수 있는 음식관광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필자는 9년 전 한국을 방문한 아랍 부호 13인에게 한 그릇에 30만원 하는 홍계탕을 만들어 그릇과 함께 자가용 비행기에 실어 주고 520만원을 받은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 음식인 오골계에 홍삼과 전복을 넣어 창작한 요리가 그 가치를 인정받은 창조적 파괴의 실증된 예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요리가 고부가 가치의 상품이 되어 소비될 때 한식당 요리사의 지위 향상은 물론 새로운 가치의 메뉴가 창조되고 한식 시장이 다양해지는 순환적 발전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농업이 살아나고 내수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발판이 된다. ‘반찬 정가제’는 입법화해서라도 추진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이런 창조적 파괴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반찬 주문 시스템을 적용하는 식당을 방문해 원하는 음식을 직접 주문하고 즐기는 전략적 연출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대통령이 몸소 실천하는 창조적 파괴는 대한민국을 신뢰와 존중을 받는 음식관광 천국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조태권 광주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