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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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젊은 문학도의 모임인<시혼동인> 중의 한 사람인 J군 집을 방문했을 때다. 그는 부엌 아궁이 앞에 옹크리고 앉아서 원고뭉치를 한장 두장 뜯으며 태우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고지 겉장에 붉은 글씨로 <노 터치>라고 큼직하게 써 놓고 아무에게도 보이려하지 않던 그에게 있어서는 참 애지중지하던 원고라는 것을 내가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보고 싱겁게 웃고 다시 원고지를 태웠다. 불이 원고지에 확 붙을 적마다 그의 눈과 얼굴이 붉은빛으로「클로스·업」되었다. 그렇게 환하게 떠오르는 얼굴은 실의에 찬 모습 같기도 하고 또 무슨 비장한 각오가 엿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신춘문예에 한번 실패한 걸 같고 그토록 열중하던 문학을 포기하려 하다니, 자식!)
○…얼마후 원고지를 다 태운 그는 벌떡 일어서더니 부엌 창밖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부터다!』그 절규는 나의 가슴을 뭉클케 했다.
문학은 민족의 동맥이라고 늘 말하던 그. 이번 기회에 더 분발하려는 그의 결심에 감동하여 나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신언모·인천시 숭의동l0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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