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대 아파트, 거제시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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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300만원대와 같은 장기임대아파트를 저소득층 근로자에게 공급하겠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이 같은 공약을 한 권민호(57) 경남 거제시장이 아파트 건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땅에 도시계획을 바꿔 민간 건설업체에 아파트를 짓게 하는 대신 일부 부지를 기부채납(기증) 받아 거제시가 임대아파트를 건립하는 방식이다. 전례가 거의 없어 ‘특혜’시비와 함께 ‘신선하고 독특한 구상’이라는 엇갈린 반응이 일고 있어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거제시는 이 같은 방법으로 제2, 제3의 임대아파트 건립을 추진할 정도로 이번 사업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거제시는 지난 3월 11일 부산의 건축업체인 평산산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거제시 양정동 산 115-7번지 일대 18만9370㎡(5만7284평) 가운데 평산산업 측이 3만5260㎡(1만666평)와 4만7462㎡(1만4357평) 2개 단지에 총 1300여 가구의 아파트 짓기로 한 것이다. 대신 평산산업 소유인 2만4111㎡(7293평)의 땅은 거제시에 기부채납하기로 했다.

 거제시는 기부채납 받은 땅에 700가구의 장기임대아파트를 지어 공약을 실천할 계획이다. 아파트를 짓는 부지를 제외한 나머지 땅은 완충녹지, 공원, 유수지, 진입도로로 사용된다.

 문제는 평산산업 소유의 사업부지 18만9370㎡ 가운데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농림지역 8만3227㎡(2만5176평)가 포함돼 있다는 점. ‘반값 아파트 공급’을 실천하지 못해 머리를 싸매던 거제시는 이곳에 아파트 건립이 가능하도록 도시계획을 바꿔주고 반값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부지를 기부채납 받는 ‘윈-윈 전략’을 내놓고 협약을 맺은 것이다. 거제지역 민영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700만원 선이어서 절반 수준인 390만원 선에 아파트를 건립해 임대하기 위해서다.

 거제시는 도시계획 변경 등 행정절차를 거쳐 내년 3~4월 착공해 이르면 2016년 말 공급할 계획이다. 이는 민간사업자가 현행법상 농림지역의 도시계획을 변경할 수 없지만 지자체는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다. 이달 말 거제시의회 의견청취, 7월 거제시 도시계획위원회 자문 등을 거쳐 오는 8월 경남도에 도시계획변경(도시관리계획 결정)을 신청할 예정이지만 경남도 도시계획위원회가 도시계획을 바꿔줄지 의문이다. 경남도 도시계획위원회가 사업의 투명성 등에 대한 시비를 우려해 용도지역 변경신청을 반려하거나 엄격한 조건을 붙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도시계획을 바꿔 농림지역에 아파트를 짓게 해준 전례가 없어 특혜 시비도 일 수 있다. 다른 민간사업자가 똑같은 조건으로 용도변경을 요청할 때 거제시가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거제시는 민간사업자와 거제시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을 뿐 특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가 ‘행복주택’ 건설을 위해 기존 철도부지(역사) 등을 활용해 토지보상비가 투자되지 않는 곳에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다른 민간사업자가 똑같은 사업 조건으로 용도지역 변경을 요청할 때는 사업장 부지를 공모해 가장 조건이 좋은 곳에 부지를 선정해 제2, 제3의 사업도 할 수 있다는 게 거제시 주장이다.

 권정호 거제시 도시과장은 “이 사업은 거제시가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서민에게 장기임대아파트를 싸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시는 도시계획이 변경되면 직접 또는 시공사를 선정해 간접적으로 아파트를 짓고 입주조건을 결정한다. 시비 소지를 없애기 위해 평산산업은 아파트 공사에서 배제할 방침이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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