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궈미들 한국행 티켓 놓고 '한글 배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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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중국 베이징 비전호텔에서 ‘제7회 성균한글백일장’이 열렸다. 중국인 대학생 참가자들이 ‘애증(愛憎)’을 주제로 작성한 답안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베이징=김혜미 기자]

“한국에서는 인차 갈게요(금방 갈게요), 갔댔어요(갔었어요). 이런 말은 쓰지 않아서 헷갈려요.”

 중국 베이징제2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에 다니는 저우루이샤(周銳霞·여·20)는 북한에서 6개월간 어학연수를 받았다. “북한에선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면서 말을 연습하긴 힘들어요. 한국에 가서 꼭 공부해보고 싶어요.”

 ‘한궈미(韓國迷·한국팬)’를 자처하는 대학생 92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성균관대 주최 ‘제7회 성균한글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백일장은 2007년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시작했고 올해로 7년째를 맞았다. 이 대회에선 조선족을 제외한 한국어 전공자끼리 글쓰기 실력을 겨룬다. 금·은·동상 수상자 3명에겐 성균관대 석사과정 학비 전액이 장학금으로 지원된다.

 이날 중국 54개 대학 참가자 중엔 베이징에서 2700㎞나 떨어진 윈난(雲南)성 쿤밍시에서 온 학생도 있었다. 한국 대학원에 진학해 한·중 비교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우샤오전(吳小珍·여·22)은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에겐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라며 “학교 대표로 참가하기 위해 치열한 예비시험을 거쳤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 대회를 거쳐간 학생은 556명, 그중 8명은 성균관대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한글 백일장에 참가한 학생들의 한국 사랑은 남달랐다. 본지가 참가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2명 중 84명(91%)이 “한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을 갖는 데 가장 영향을 끼친 것으로는 ‘한국의 대중문화’(59%)와 ‘한국 브랜드 상품’(13%)을 꼽았다. JYJ의 멤버 김준수를 좋아해 6년 전부터 한국어를 공부해왔다는 왕자(王佳·19)는 “그의 음악을 MP3에 담아 한국어로 받아 적고 따라 부른다”며 노래 가사를 줄줄 읊었다.

 반면 한국어나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이 개인적인 취미로 그치는 데 대한 아쉬움도 나타났다. 중국 현지 한국 기업에 취업하거나 한국 관련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문이 좁은 탓이다. 산둥사범대 김분남 교수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은 중국인 채용 규모가 작고 중소기업은 조건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중국 학생들도 “한국 기업에서 중국인이 승진할 수 있는 상한선은 부장급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기업들이 현지화를 한다고는 하지만 중국 학생들은 ‘유리천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회의 금상은 산둥대 후원친(胡文琴·여·22)에게 돌아갔다. ‘애증(愛憎)’이라는 주제를 할아버지와의 사연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심사를 맡은 박정하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는 “중국인 정서상 ‘좋고 싫음’이란 뜻으로 오해할 수 있는 애증의 감정을 한국적으로 잘 소화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후원친은 “중국 사회에서 한국을 잘 이해하고 있는 리더가 돼 한·중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대회 위원장인 이명학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한류 드라마나 음악만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킬 수는 없다”며 “한국어와 한글을 통해 중국인들이 우리 학문과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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