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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 근절, '현직' 의지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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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서울고등법원은 이달 초 청사 로비에 지하철 개찰구 방식의 ‘스크린 도어’를 설치했다. 판사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입구에 세웠다. 외부인은 안내실에 신분증을 내고 방문 목적을 밝힌 뒤 방문증을 발급받아야만 스크린 도어를 통과할 수 있다. 조병현 서울고등법원장은 “전관예우(前官禮遇·판사나 검사로 일하다 변호사로 개업해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것) 시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어 판사들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예전에도 변호사가 판사실에서 면담을 하려면 방문증을 발급받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방문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은 전관 출신 변호사가 방문증을 발급받지 않고 판사실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 판사는 “알고 지내던 선배가 판사실까지 찾아와 ‘지나가다 들렀다’고 하면 돌려보내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스크린 도어를 설치한 뒤론 이런 일이 사라졌다. 한 전관 변호사는 “변호사의 법원 출입이 까다로워지는 분위기”라며 “불편하지만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선 서울지방변호사회 주최로 ‘전관예우 근절 방안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심포지엄에선 전관예우의 잠재적 당사자인 변호사 761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변호사들의 63%는 전관예우금지법에 대해 “전관 변호사가 우회적으로 사건을 수임해 사실상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 6월 12일자 14면

 시행 3년차인 전관예우금지법(변호사법 31조)은 ‘공직 출신 변호사는 퇴직 1년 전부터 퇴직일까지 근무한 법원·검찰 등 국가기관이 처리하는 사건을 퇴직한 날부터 1년 동안 맡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 법의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변호사 중에도 많지 않다. 전관 변호사가 암암리에 사건 담당 판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청탁하거나 문서를 전달해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다른 변호사의 이름을 걸어놓고 사건을 맡는 ‘대리 수임’은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대형 사건을 수임한 전관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요청에 응했을 뿐이며, 변호사 고유 업무인 법률적 조언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건 의뢰인은 전관 변호사에게 재판부에 ‘보이지 않는 힘’을 써주길 기대한다.

 전관예우금지법은 전관예우 ‘수혜자’인 변호사만 규제한다. 심포지엄에선 “전관예우 실행 당사자인 현직 판검사도 징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법은 만능이 아니다. 불편하더라도, 지나치다 싶더라도 스크린도어처럼 전관예우의 싹을 자르려는 법원·검찰 스스로의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