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특수 선박·플랜트로 불황 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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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업리그

연근해 석유시추설비인 ‘잭업리그(Jack-up Rig)’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생소한 설비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이후 국내 조선업계 수주 리스트에서 사라졌던 품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이 12일 노르웨이 석유회사인 스타토일로부터 2기의 대형 잭업리그를 수주했다. 조선업체들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틈새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잊혀졌거나 외면받아온 품목을 재발굴하는가 하면 아예 새로운 형태의 배나 설비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중소형 업체들은 대형 업체들이 외면한 중형 선박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잭업리그는 수심 100m 이내의 연근해, 주로 대륙붕 지역의 유전 개발에 투입되는 중소형 시추설비다. 심해용 시추설비인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가 10억 달러를 쉽게 넘어가고, 드릴십이 5억~6억 달러에 달하는 데 반해 기존의 잭업리그는 2억 달러 수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업계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유다. 잭업리그가 재부상한 것은 역시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업계 불황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750만CGT(수정환산t수)로 2011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올해 1분기에도 수주금액이 전년 동기보다 31%나 감소했다. 고부가가치 설비 발주 감소와 선박가격 하락이 주된 이유다. 관심권 밖 품목에라도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최근 발주되는 잭업리그가 과거와 달리 대형화, 고부가가치화됐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삼성중공업 수주 제품은 최저 해저 10㎞의 심해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노르웨이 북해의 혹한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도록 고(高)사양으로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가격도 1기당 6억5000만 달러로 기존의 3배를 웃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도 잭업리그에 주목하고 있다.

 성동조선해양은 참치 선망(旋網)선을 국내 최초로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7월 사조산업에 인도한 1800t급 참치 선망선 ‘사조 콜롬비아’호는 어군탐지기·소나·레이더·위성통신 등 최신 장비를 탑재해 기존의 해외 제품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갖췄다. 지난해 10월에만 3척의 추가 발주가 이뤄졌고, 현재 해외 선사들과의 협상도 진행 중이다. 5만t급 내외의 중형 탱커선을 일컫는 MR(Medium Range)탱커는 중견 조선소들의 틈새 상품이다. ‘빅3’ 업체들이 규모 경쟁을 하느라 중형 탱커선을 외면하자 STX조선해양·현대미포조선·SPP조선 등이 이 분야를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 덕택에 올해 1분기 세계 탱커 발주량 180만CGT의 57%인 103만CGT를 우리 조선소들이 수주했다.

 현대중공업은 해상 및 육상플랜트 핵심 설비인 원심식 가스압축기를 국내 최초로 만들었다. 이 설비는 대량의 가스를 안정적으로 운송할 수 있도록 원심력을 이용해 가스를 압축하는 설비다. 대당 가격이 40억원이 넘고 연간 세계시장 규모가 40억 달러에 달하지만 그동안 유럽·미국·일본이 독점해 왔다. 전재천 대신증권 연구원은 “LNG선이나 드릴십 등 우리 업체들의 주력 설비들에 대한 발주가 그동안 많이 이뤄져 한동안 주문이 뜸할 것”이라며 “최소한 올해 4분기까지는 조선업황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틈새 상품을 적극 공략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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