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의 가치

중앙일보

입력

제프리 P. 칸 보건학 박사
미네소타 대학 생물윤리 센터 소장

미국 식품의약청(FDA)는 최근 적절한 인체 실험을 거치지 않은 새로운 인체용 백신을 승인했다.

생물학 무기로 쓰이는 탄저병이나 천연두 등에 대항하는 새 백신을 인체에 실험하려면 연구 참가자들이 병원균에 노출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비윤리적이라는 우려가 일자 이같은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시험 대상을 이 같은 병원균에 고의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질병에 감염될 확률을 높이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그래서 FDA는 동물 실험만 거친 뒤 이 같은 백신의 시판을 허용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이며, 인체 시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실험 중 일어나는 위험

다른 신약들과 마찬가지로 백신도 임상 실험을 거친다.

그러나 백신 실험은 조금 다르다. 백신이 물리치고자 하는 병원균에 시험 대상자가 노출돼야 하기 때문이다.

백신 실험 참가자들을 병원균에 노출시킴으로써 얻어낸 정보를 통해 감염자를 비롯해 타인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 혜택에 비례해 위험도 커진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위험이 커지는 만큼 적어도 실험 대상자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잠재적인 혜택도 커지게 된다.

이와는 다른 논리로, 소수를 해로운 병원균에 노출시킴으로써 얻어낸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통해 장차 수 많은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위험한 실험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 논리의 문제는 이같은 산술적 계산을 통해 현재 실험 대상자의 안녕과 장차 환자가 될 이들의 안녕을 맞바꾸는 것이 효과적이냐는 것이다. 당장 환자가 아닌 이들은 이같은 '거래'가 합당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당장 병원균에 노출돼야 하는 이들은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백신 실험의 위험

다수의 백신 연구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실험 비참가자들에 비해 개발 중인 백신이 맞서게 될 질병에 걸릴 확률이 대단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백신의 실험 대상자들은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주입식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모집되는데 이들 모두 HIV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

이 연구에서 시험 대상자들을 고의적으로 HIV를 감염시키지는 않지만 모집된 대상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적 행동 중에 감염되기 쉽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접근 방식은 탄저병이나 천연두 백신 연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탄저나 천연두를 비롯한 생물테러에 쓰일 가능성이 있는 병원균들은 일상 생활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백신 실험 연구 대상자들은 천연두 같은 질병에 '자연스럽게 감염될(challenged)'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천연두 백신이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여타 의학 실험들에서처럼 동물 실험 결과는 인체에서도 유사한 효과를 보인다.

동물이 인체와 유사할수록 인체에 미치게 되는 효과를 좀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달리 말하면 인간과 동물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동물 실험의 결과로 얻은 정보로 인체가 똑같은 약이나 백신에 어떻게 반응할지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FDA의 계산에 따르면 인체 실험 대상자들을 치명적일 수도 있는 질병에 노출시키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유익은 동물 실험으로 얻은 불완전한 정보로 인한 손해보다 크다.

어쨌든 동물 실험만을 거친 백신이 승인된다면 결국 많은 이들은 자연적, 혹은 생물 무기를 통해 질병이 우리 삶 속으로 침투하게 될 때에 이르러서야 (옳고 그름이) 자연스럽게 실험받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도전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연구와 단순히 동물 실험만을 거쳐 안전성이 떨어지고 효과면에서 뒤질 가능성이 있는 백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이 두가지 사이의 균형을 제대로 맞췄는 지 알게 될 것이다.

(CNN) / 이정애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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