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알알이 원정의 손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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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주군 배밭골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아낙네의 손길은 배따기로 바빠진다. 『익기도 잘도 익었구나!』신이 난 송금자양(14).
극심했던 가뭄도 말끔히 잊은 듯 바구니 가득히 배를 담아 든채 활짝 웃었다. 노르끄레한 빛깔에 팽팽히 익은 배는 만지면 톡 터져 껍질 아래서 달콤한 뱃물이 금방 조르륵 흘러나올 것만 같다.
아직 따다 남은 배는 하늘거리는 단풍든 잎 사이에 자태를 숨겨버리고 드높은 하늘엔 흰 구름이 두어점-.
『맛은 역시 나주배가 제일이어.』일손을 멈춘 늙은 원정은 막 따낸 배 한개를 삽지칼로 깎아 준다 먹어보고 말하라는 것일까.『겨울철에 막걸리를 한사발 마신뒤 아랫목에 누워서 배를 깎아먹는 맛이란 기가 막히다』는 이 원정은 배 자랑에 침이 마른다.
배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나지만 맛은 나주배를 못 따른다,
금촌마을에서 나는 배는 모양은 예쁘지가 않고 울퉁불퉁 하지만 맛이 꿀맛. 몸이 굳으면서도 달아서 가을에 거눴다가 이듬해 늦봄까지 별 설비 없이도 저장이 된다.
이 배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대만으로 건너간다. 수출품인 것이다.
나주사람들은 배를 아낀다. 배는 화채와 냉면에 오르고 배엿의 원료가 되고 감기에는 배를 구워서 먹는 치료법이 있어 약으로 쓰이는등 소중한 것으로 다뤄진다.
나주에 배밭이 생긴 것은 60년의 역사가 있다.
1910년쯤 송등(마쓰후지)란 일본사람이 다습한 점토질의 토질에 침을 흘린 나머지 3만주의 배나무 묘목을 실어온 것이 시초. 재미를 본 송등에 이어 일본사람이 너도나도 덤벼 해방될 때 30만주 이상의 배나무가 있었다. 지금은 남평면을 중심으로 사방50리에 눈이 닿는 곳까지 60만 그루가 넘는 배 밭이다. 배꽃이 필때의 이곳은 하얗게 물든 들판. 재배업자는 1천1백명. 한 업자가 5백주 안팎을 가꾼다.
연간생산량은 3백만관, 2억4천만원을 벌어들인 단다.『지난 여름 가뭄 때는 정말 내 몸이 타는 듯 합디다.』나주군 원예조합장 송진석씨(52)는 풍성한 열매가 창고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쳐다보면서 감회에 젖었다. 『하늘이 주는 은혜이긴 해도 어느 한개인들 원정의 따뜻한 손길이 낳지 않은게 있나요.』
꽃이 피기 전 가지를 치고 1년에 30번 약을 뿌리고 열매를 종이에 싸주었다가 익어 갈 때 는 다시 풀어 햇빛을 쐬고 바람이 불면 떨어질까 근심하고- 그러나 토실토실하게 익은 배 밭에서 원정들은 하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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