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히는 최강희 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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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과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에서 전반 44분 결정적 찬스를 놓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한 이동국(오른쪽)이 경기 후 머리를 감싸 쥐며 그라운드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베이루트(레바논)=뉴시스]

최강희(54) 감독의 고집이 큰 화를 불렀다. 한국 축구가 살얼음판 위에 섰다. 5일(한국시간) 베이루트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에서 한국은 레바논과 1-1로 비겼다. 후반 추가 시간 5분 김치우(30·서울)의 프리킥 동점골이 아니었다면 진 경기였다. 한국은 승점 11점으로 조 1위다. 그러나 불안하기 짝이 없다. 우즈베키스탄(11점)·이란(10점)을 간발의 차이로 앞서고 있다.

 남은 두 경기 중 한 번만 이기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사실상 확정할 수 있다. 그러나 대표팀의 최근 경기를 보면 남은 두 경기에서 승점 1점이라도 올릴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한국은 지난해 6월 시작한 최종예선에서 2연승을 거둔 이후 네 경기에서 1승2무1패를 기록했다. 그나마 1승도 지난 3월 카타르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종료 직전 손흥민(21·함부르크)의 골이 터져 거둔 신승이었다.

 최 감독은 전북 현대를 이끌며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화끈한 경기를 펼쳤던 지도자다. 한물간 선수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일가견이 있어 ‘재활공장장’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최 감독은 기량은 뛰어나지만 개성이 뚜렷해 다루기 어려운 유럽파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 최 감독은 아예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세 경기에 박주영(28·셀타비고), 기성용(24·스완지시티), 구자철(24·아우크스부르크) 등 대표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세 선수를 모조리 제외했다. 박주영은 소속팀에서 출전을 못했고, 기성용과 구자철은 부상 여파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게 최 감독의 설명이다.

 그러나 축구계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박주영은 최 감독의 애제자인 이동국(34·전북)과 최전방 공격라인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기성용과 구자철은 지난 3월 대표팀 소집 기간 중 결혼 발표 등 사생활 문제로 대표팀 분위기를 망쳤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표에서 제외된 기성용은 레바논전을 앞두고 트위터에 ‘리더의 자격’ 운운하는 글을 남겨 물의를 빚었다. 대표팀 내부에 진통이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고, 레바논전은 이 같은 불협화음의 결과다.

 최 감독은 이번에도 손흥민과 지동원(22·아우크스부르크)의 활용 해법을 찾지 못했다. 두 선수는 유럽 축구의 중심으로 떠오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독일 축구의 카이저로 통하는 베켄바워도 극찬한 유망주다. 그러나 레바논과 간신히 비긴 한국 대표팀에서는 후보다. 이동국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유망주의 잠재력을 썩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구자철·기성용 대신 태극마크를 단 김남일(36·인천)과 한국영(23·쇼난 벨마레)도 최 감독이 기대했던 투혼을 발휘하지 못했다. 포백 수비라인도 매번 얼굴을 바꿔 가며 실험만 거듭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최 감독은 “본선 진출을 이루고 전북으로 돌아가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스스로 시한부 감독으로 못을 박은 게 팀을 위기에 빠뜨린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2010년 남아공까지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 축구의 맥이 끊길 위기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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