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흔한 이름 '존' … 부모는 십중팔구 공화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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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 교수 에릭 올리버와 소설가인 그의 부인은 딸 이름을 ‘에스메(Esme)’라고 지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 D 샐린저의 단편소설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렇다면 올리버와 그의 부인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에 가까울까 ‘보수’에 가까울까. 정답은 ‘진보’다. 이들 부부는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지지할 확률이 높다. 미국 부모들이 여자아이 이름으로 흔하게 선택하는 ‘캐서린’이나 ‘브리스틀’ 대신 ‘에스메’를 딸의 이름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소수만 이해하는 이름을 택함으로써 자신들의 문화적 소양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 인터넷판은 4일(현지시간) 시카고대 연구팀이 최근 미국 중서부정치학회 연례 회의에 제출한 연구 결과를 인용해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는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조차 다르다”고 전했다.

 연구팀의 에릭 올리버, 토머스 우드, 알렉산드라 배스는 2004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난 50만 명의 신생아 데이터를 분석했다. 데이터에는 아이 이름은 물론 부모의 이름·교육 수준·인종·주소 등이 자세하게 담겼다. 신생아의 이름은 ‘특이(같은 이름이 1명도 없는 경우)’, ‘드문(같은 이름이 20명 이하인 경우)’, ‘흔한(100명 중 1명이 같은 이름인 경우)’의 세 집단으로 나눴다.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아이 대부분이 민주당 지지자나 진보주의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나왔다. 문화적 특성상 대개 아시아·아프리카계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특이한 이름을 많이 주는데, 백인 부모가 같은 패턴을 보일 경우 이들은 최소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라는 특성도 나타났다. 올리버 교수는 “진보주의자들이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는 의도적이건 그러지 않건 자신들의 문화적 취향과 학식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존·리처드·캐서린 같은 전통적이고 흔한 이름은 공화당 지지자나 보수주의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두드러졌다. 부유한 백인들은 경제적 우월성을 드러내는 이름을 선호했으며 자녀 이름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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