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용의 용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역사상 최고의 농서는 기원전 8세기에 「헤시오도스」가 썼다.
그는 『농경과 가사에 힘내고 있는 부유한 이웃을 보면 누구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말하면서 농사를 권장했다.
라마시대의 시인 「빌기리우스」는 「농업시」속에서 『봄이 되면 쟁기를 끄는 소가 흙의 무게에 신음 소리를 내고, 쟁기끝이 닳아서 번쩍이는 모습이 보고싶다』고 농사의 기쁨을 노래한적도 있다.
그렇지만 농사라면 어딘가 모르게 동양적인것처럼 느껴진다.
그러기에 어느 역사학자는 서양문화의·유목적 성격과 동양문화의 농경적 성격과를 대비시켜가며 양자의 차이를 논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유럽」의 농사가 인간본위이고, 농업의 발전을 개인의 자발에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얘기다.
동양에서도 농민본위의 생각은 18세기 중엽 이후부터 싹텄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자연에 맡기고, 자연의 힘을 빈다는 생각은 오늘까지 별로 변함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에게 인종과 체관의 서글픈 자세가 떠나지 않는 것도 이런데 까닭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서 전후까지에만 비가와도 굶어 죽진 않을 거라고 가냘픈 기대를 안고 매일같이 하늘만 쳐다보던 농민들의 이마에는 소서가 지난지 1주일이 되어도 비 한방울 맺히지 않았다.
그래서 농민들은 자포에 빠져들고 인심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이보다 더 심한 때도 있었단다. 더 심한 때가! 난 말이다. 남자나 여자들이 어린것들을 잡아먹고 있는 것을 이 눈으로 본 일이 있단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도망치려는 아들에게 이렇게 늙은 아비 왕용은 외쳤다. 「펄벅」의 소설 <대지>의 한 구절이다.
하늘을 뒤덮는 듯한 메뚜기의 대군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좀먹고 간 다음에도 왕용은 땅을 버리지 않았다. 절망하지도 않았다. 이게 농부의 참다운 모습인가 보다.
어제부터 그처럼 기다리던 장마에 들어섰다. 한재에 이어 이번에는 또 수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자연을 이겨내는 용기는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