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발명 천재가 들려준 성공 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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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규연
논설위원

고교 시절 가장 재수 없던 친구 유형은? 잘생기고 집안 좋다며 뽐내던 친구, 험담 잘 늘어놓던 친구? 그보다는 잘 노는데 성적도 잘 나오는 친구가 아니었을까. 예민한 감수성을 입시 감옥에 가둬놓아야 하던 시절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말이다. 그 시절 내 주변에도 그런 급우가 있었다. 매일 농구·축구를 하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다고 떠벌리던 녀석, 시험 직전에도 알짱거리며 햇볕을 쬐러 가자고 유혹하던 녀석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은 자유를 즐기는데도 성적은 항상 좋았다. 한번은 작심하고 녀석에게 물었다. “너 IQ 몇이냐, 너 집에서 잠 안 자지.” 예상과 달리 IQ·수면시간은 비슷했다. 결국 그때는 녀석의 공부 비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최근 금세기 최고 발명가 중 한 명인 레이 커즈와일의 강연을 들을 때 그 시절이 생각났다.

 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미래창조 콘퍼런스’ 현장. 청중이 몰려 대회의장은 꽉 찼다. 주최 측은 옆 빈 회의실까지 개방해야 했다. 기조연설을 맡은 커즈와일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에디슨의 적자, 미국을 만든 16명의 혁신가 중 하나 등이 유력 언론이 그에게 붙여준 수식구다. 광학 문자인식 시스템, 음악 신시사이저, 어휘 음성인식기 등을 만든 발명가이자 놀라운 예측력을 보여온 미래학자다. 얼마 전에는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로 임명됐다.

 “구글에서 패턴인식 연구를 한다. 우리 뇌는 논리보다 패턴을 잘 알아챈다. 이를 검색에 활용할 작정이다. … 2030년께 뇌와 컴퓨터는 완벽히 하나가 되는 신세계에 인류는 진입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듯 인간과 기계가 합쳐지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세상을 그는 내다봤다. 다만 영화와 달리 커즈와일의 미래사회는 우중충하지 않다. 인간이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세상을 그린다. 그런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성공할 것이라고 그는 선언했다.

 “한국의 미래 여건은 좋다. 과학기술 친화적이다. 교육열이 높다. 스마트폰 활용도 세계 최고다. 그런데….”

 그의 강연이 한국에 대한 조언으로 바뀌는 순간, 청중은 주목한다. 디지털시대의 노스트라다무스 입에서 어떤 처방이 나올까.

 “미래에 대한 열정이 더 필요하다. 열정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생긴다. 그런 일을 찾도록 학생·직원에게 자유시간을 좀 더 줘야 한다.”

 옆에 앉아 있던 대학원생이 “(처방이) 단순하고 싱겁다”고 평했지만 곱씹어볼 만한 구석은 분명히 있었다. 그의 주장을 뇌과학으로 풀면 이렇다. 같은 일만 되풀이하면 뇌의 특정 부위·회로만 강해진다. 색다른 정보가 들어와야 뇌 회로는 확장된다. 자유시간은 그래서 필요하다. 구글의 ‘20% 규칙’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하루 업무시간의 20%, 주 5일 중 하루는 반복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원하는 일을 하도록 정해놓는다. 구글적 창의를 유지하려는 규칙이라는 것이다.

 요즘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난다. 갑을(甲乙) 논쟁, 변태 소동은 수직사회의 한계를 보여준다. 성장의 정체는 2등 모델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앞으로도 당분간 경쟁·모방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 후다. 창의가 활개치는 2030년 신세계가 오는 게 맞다면 개인·기업·국가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뇌 회로를 넓혀야 한다. 개미가 덕목인 사회에서 개미·베짱이가 공존하는 사회로 틀을 바꿔나가야 한다.

 에디슨의 후예가 들려준 ‘성공전략=자유시간’은 거창한 비법을 기대한 이들에게 허무개그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조급증에 휘둘리는 개인·조직에 던지는 경고임에 틀림없다. 여백 없는 창의는 없다고 웅변도 한다. 고교 시절 ‘재수 없는 녀석’의 탄생 배경에는 뻔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강박의 안개에 깔려 있었다. 미래 앞에서 우리는 좀 더 명랑해져야 한다. 주머니 속에서 작은 조약돌을 돌리고 마음속에 호수를 그리며 엉성한 자작시를 읊조리는 작은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