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대에 땅 무상 임대" 75년 전 황실 약속 아직 유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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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현 숙명여대)에 황실 땅을 무상으로 빌려준다.”

 1938년 구황실(舊皇室) 재단을 관리하던 이왕직 장관의 학교 부지 무상 사용 약속이 지금도 유효한지를 가리는 판결이 24일 나온다.

 지난해 5월 숙명여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부터 국유지를 무단 점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변상금 약 74억원을 부과받았다. 국가권리의 시효인 5년치 사용료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문제가 된 국유지 2만여㎡는 서울 청파동 제1캠퍼스 자리로 학교 전체 부지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 숙명여대는 같은 달 서울행정법원에 캠코를 상대로 변상금부과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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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명여대는 해당 부지에 대해 “무상 사용 승낙을 받았다”며 당시 문서를 공개했다. 학교 측은 “학교가 한번 세워지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간 존속하기 때문에 당시 무상 사용 승낙은 학교가 존재하는 한 계속 유효한 것이 상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캠코는 “사용 승낙은 ‘영구적 승낙’이나 ‘무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숙명여대는 변상금 12억원을 부과한 용산구청과 같은 내용의 소송을 해 94년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학교 측은 “관리 주체가 캠코로 바뀌었다고 똑같은 소송을 하는 것은 행정력 낭비”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캠코는 “당시 용산구청의 변상금 부과는 무상 사용 허가를 철회한다는 의사 표시”라며 “판결 이후 국유재산법이 변경돼 상황이 달라졌다”고 맞받았다. 94년 3월 국유재산법이 개정되면서 변상금 징수 대상에 ‘사용 허가기간 만료 후 재허가를 받지 않은 경우’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래 지난 10일로 예정됐던 판결 선고를 “사건이 복잡해 검토할 게 많다”며 24일로 미뤘다.

 그러나 숙명여대는 “패소하면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캠코 측은 “판결을 일단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숙명여대는 최종 패소할 경우 매년 약 15억원의 사용료를 내거나 해당 부지를 매입해야 한다. 매입가는 최소 1200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숙명여대 사무처 김준호 과장은 “등록금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럴 여력이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숙명여대는 지난해 12월부터 동문·교직원·재학생 등을 대상으로 ‘캠퍼스 지키기 10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숙명여대의 설립자는 고종의 비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친모인 순헌황귀비다. 황귀비는 일제가 황실의 재산을 국유화하려 하자 황후의 소유였던 용동궁(현재 종로구 수송동) 부지와 개인 재산을 내놔 1906년 숙명학원(숙명여대의 학교법인)의 전신인 명신여학교 설립했다. 이후 숙명여대는 황손과의 경영권 분쟁에도 휘말리게 된다. 64년 영친왕의 둘째 아들이자 황귀비의 손자인 이구씨는 숙명학원의 경영권을 주장했다. 이에 문교부는 66년 행정권을 발동, 기존 이사진의 승인을 취소하고 이구씨 측 인물을 이사에 임명했다. 학원 측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문교부는 ‘숙명여대의 준국립화’안까지 내놨다. 1년여의 분규 끝에 결국 숙명여대가 승소하면서 68년 제3의 인물들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숙명여대는 최근 황실 사학임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황선혜 총장은 21일 “2016년 신입생들이 한 학기 이상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황실 사학으로서의 정체성을 교육받는 ‘로열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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