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관계에 새비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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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산정영 주한일대사 박탈의 배경(동경="강범석특파원)">일본 외교진에서는 주미·소·영·중·「유엔」대사를 이른바 「5대사」로 일컬어 장노급직업외교관을 임명하는것이 인사관례가되어왔다.
그런데 이가운데 주중대사는 대중(국부)관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저하되고한·일국교경장화가이룩되면서 초대주한대사로 내정됐던 이관유이랑주화난대사가 접수국(한국)측의 기피로 좌절되면서 당시 주중대사였던 목촌사낭칠씨가 임명된뒤로는 주중대사가 「5대사」의 인사장의 고려에서빠져나가고 한·일관계의 비중이 늘어난것도 곁들여대신 주한대사가 끼어들게 됐다.
대사급외교관중 1929년(소화4년)의 교관시험에 합격하여 외무생에든 「4연조」가 현재 연수가 가장 위이며 목재대사는「5연조」늦다. 「6연조」인 이관대사의 「그룹」에는 적절한 인물이적고해서 제2대주한대사는 우장외무구관의 「그룹」인「7연조」(1932년)에서 임명되리라고 예측되어왔으며 기실 내전주독대사 석흑주 「멕시코」대사등이 물망에 올랐었다.
목촌주한대사의 경질은 그가 대사임기의통례인 2년반정도를거의채우게됐고 또한·일관계가본궤도에올라섰다는 배경이 꼽혀지고있을뿐 유별난 사유는 없는것같다.
삼목외상은 제2대주한대사를물색하는데있어한·일 관계가 발랄히전개되고있는이때 비교적「젊은층」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그러나 서열을 소중히다루는외교관리등의 관례, 한·일관계의 비중등을고려, 「9연조」(소화9연=1934년외교관시험합격그룹)에 선을근것이라 한다.
제2대주한대사로 한국측 「아그레망」을얻은 김산정영(가나야마·마사히데)주「폴란드」대사는1934년동경대학정치학과를 졸업하면서 외교계에든 직업외교관이다.
김산대사는 인간관계가 더없이 원만하기로 정평이있으며 미묘한 그늘을지닌한·일관계의「파이프」역에 그가 발탁된것은 바로 그같은 성품이 높이 평가되었기때문이라고한다.
자칫 상호관계가 묘하게되게마련이었다는 「뉴요크」의일본 「유엔」대표부와총영사관관계가 원만하게굳어지기는 그가 「뉴요크」총영사로부임한이후라하며 「인화」의 솜씨가대단하다는것.
김산대사부처는 모두 독실한 「가톨릭」교도. 그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체가 12명을 헤아리는 다복한 가정.
그와같은 가정관계때문인지 본인 스스로도 해외근무를희망하여 30여년간의 외교관생활에서 본생근무는 외무수구·아국장이눈에뛸뿐, 주「바티칸」공사관 1등서기관, 주「마닐라」재외사무소삼사관, 주「호놀룰루」총령사, 주「뉴요크」총령사 그리고 주「폴란드」대사(l967년3월) 등등 줄곧 해외근무를 쌓아왔다. 주재국의 입장을본성에정력적으로 반영시키는외교관으로도손꼽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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