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교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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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었던 강이 풀리고 골짜기의 눈이 녹으면 자연은 긴 동면에서 기지개를 켜고 땅이, 태양이 서둘러 봄을 재촉한다. 올 봄에도 많은 학생들이 교문을 나섰고 또 새 얼굴들이 새 모자를 쓰고 교문을 들어섰다. 많은 선생님들이 교문을 떠난다고 사임인사를 하였다. 학생이나 선생이나 모두가 제각기 자기의 길을 따라 떠나감에는 다름이 없지만 학생은 학창을 나서는 것이요, 선생은 교편을 버리고 교직을 떠나는 것이니 나섬과 떠나감에 얽힌 느낌은 거리가 없지 않은 것 같다.
몇 푼 되지 않는 퇴직금이지만 우선 그것으로 부채라도 메워보겠다는 비장한 각오이리라.
교직에는 계급이 없다. 권세도 없다. 출세도 없으며 부귀도 없다. 인간이 인간을 대상으로 인간을 기르는 곳이니 이런 것은 바랄 수도 없으며 또 바라서도 안될 것이다. 일을 잘 하거나 오래된 숙련공은 그만큼 대우나 보수를 더 받는 것이 우리 사회이지만 교직자에게는 그런 혜택마저 희박하다.
60평생을 교직에 묻으면서도 평교사로 집 한간 없이 살아온 교사의 예는 허다하다. 교직이 출세나 부귀를 누리기 위한 직업이 아니니 언제나 초라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생활의 안정도 없이 항상 청렴만을 주장하며 살수 있으랴. 그것은 곧 희생이지만 희생을 다음세대에까지 강요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새 학기가 되어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입학식에 나선 까만 눈초리들이 총총하게 희망에 빛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뇌리에 새기며 학교를 떠나가는 그분들은 반드시 직업의 귀천이나 직위에 불만이 있어서 교직을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동기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앞날에 대한 보다 더 심각한 생활의 근본을 해결하기 위하여 교직의 대열에서 물러설 결심을 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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