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누가 갖나?' 재계 물밑 각축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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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 때면 벌어지는 치열한 눈치 작전을 보는 듯하다. ”

오는 6월 말로 시한을 잡아놓은 KT(옛 한국통신)완전 민영화를 위한 정부 지분매각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입시에 비유했다.

자산 26조원. 지난해 매출 11조 5천1백83억원, 당기순이익 1조8백72억원. 올 1분기 매출 2조9천1백89억원, 순익 5천16억원. 직원 수 4만3천명. 재계 6위 규모로, 누가 가져 가느냐에 따라 향후 한국 재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을 공룡기업 KT.

5조3천억원(주당 6만원 기준) 규모의 정부보유 지분 28.37%(8천8백57만4천4백29주)의 매각을 앞두고 정부와 업계가 치열한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특정 대기업의 경영권 확보’를 둘러싸고 ‘재벌 특혜’문제를 제기한 시민단체, KT노조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당초 정부는 매각계획안을 지난달 하순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계속 미뤘다. 가장 합리적인 매각 방안 마련에 시간이 걸리고, 공기업 민영화추진위원회의 서면결의가 늦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입찰공고와 매각가격 결정, 매각대금 입금까지의 모든 일정은 월드컵 이전인 5월 말까지 마칠 예정이라고 정보통신부는 밝혔다. 정부는 지난 3월 삼성·LG·현대·JP모건 증권을 자문 증권사로 선정, 매각을 추진해 왔다.

이번 정부지분 매각에서 관심의 초점은 이른바 전략적 투자자에 대한 지분 매각 물량과 입찰 참여 기업.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달 중순 ‘소유·경영 분리 원칙 아래 동일인 지분 5% 제한’을 말할 때만 해도 ‘정부가 진짜 매각 의지가 있는 것이냐’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 식’의 민영화 방안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달 하순 들어 정부가 전략적 투자자인 대기업이 주식 취득 물량의 두 배(10%)에 해당하는 교환사채(EB)를 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재벌 특혜’ 논란이 일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EB를 주식으로 교환하면 5% 주식을 매입한 특정 대기업이 KT지분 15%를 차지, 사실상 KT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략적 투자자 몫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은 기관투자가나 일반투자자·우리 사주로 하여금 소화토록 한다는 것.

정통부 통신업무과 민원기 과장은 “정부지분 완전 매각 이후에는 정부가 KT에 대해 말할 아무 권리가 없는 것 아니냐”며 “민영화 이후는 시장이 알아서 하는 것으로 누가 경영권을 갖게 되느냐는 시장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매각 이후에 발생하는 문제는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의 적용을 받게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시장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각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믿어달라”고 덧붙였다.

현재 약 2조3천억원 규모의 KT지분 15%를 매입할 능력이 있고 지분 매각 입찰에도 참여할 것으로 언급되는 곳은 삼성·SK·LG 등 3개 기업. 이들 업체는 모두 입찰 참여에 대해 ‘부인’또는 ‘구체적 매각조건과 경쟁업체의 움직임을 지켜본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9일 1분기 실적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IR담당 주우식 상무가 “KT민영화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도 “삼성은 전자 차원에서든 그룹 차원에서든, 5% 지분 제한이 있든지, 15%를 확보해 향후 경영권을 가질 수 있게 되든지 어느 경우에도 현재로서는 매각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LG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도 “현재로서는 참여한다, 안한다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지분 매각 입찰에 참여하더라도 상징적인 차원에서 참여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 구조조정본부 관계자 역시 “상세한 매각 조건과 시장상황·경쟁업체 움직임 등 전후 사정을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입찰 참여 부인과 SK, LG의 원론적인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업계 관계자들은 향후 한국 재계의 판도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이번 KT지분 매각에 대기업들이 스스로의 말처럼 ‘소극적 관심’만을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누가 첫발을 담그는지 서로 눈치를 보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들 대기업이 KT지분 매각에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KT 주식을 사더라도 경영권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재벌이 KT마저 가져간다는 비난 여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이 15%지분을 가질 수 있다는 방안이 흘러나오면서 참여연대와 경실련은 지난달 말 잇따라 “특정 대기업에 KT 경영권이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 “특정 재벌에 특혜가 돌아가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KT노조도 2일 ▶재벌및 외국자본 소유지배 경영반대 ▶1인 소유한도 3%이내 축소 ▶국민을 위한 공공성 유지대책 마련 ▶KT 1인 소유지배 경영반대 ▶고용안정대책마련 ▶위 사안이 해결되지 않을 때는 현재의 민영화 일정 연기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현재 정부의 민영화 추진 일정에 대해서도 당초 6월 말이 시한이었던 일을 무리하게 월드컵 이전에 마무리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업의 민영화이니 만큼 월드컵에 구애받지 말고 매각방안과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좀더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고민이다.

시장에서 매력을 느낄 만한 상품으로 만들어 팔자니 ‘재벌 특혜’라는 비난이 부담스럽고 ‘동일인 지분 5% 제한’ 등 경영권과 무관한 투자는 기업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로서 바람직한 것은 전략적 투자자 몫으로 배정된 5%를 3∼4개 기업이 1∼2%씩 골고루 가져가는 것이겠지만, 대기업들이 투자목적만으로 수천억에서 조단위의 돈을 ‘태워’가며 참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KT 민영화추진단 맹수호 단장은 “KT민영화는 셀러즈 마켓(Seller’s Market)이 아니라 바이어즈 마켓(Buyer’s Market)”이라며 판매자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매각 이후 경영권 확보 문제는 시장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하는 민 과장도 “참여연대나 노조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며 특정 기업의 경영권확보 문제로 고민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특정 대기업이 장기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수년 내에는 힘들어 KT는 정부 지분 매각 이후에도 한동안 현 이상철 사장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장관직을 고사하며 성공적 민영화를 통해 ‘새로운 한국형 대기업 모델’을 만들고 KT를 ‘월드 클래스 컴퍼니’로 성장시키겠다는 이 사장은 지난 2월 인사에서 자신의 측근들을 주요 포스트에 포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3년 임기로 취임한 그가 다음 임기까지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그는 “GE, IBM 등 해외 선진 기업들은 주주들이 3% 수준에서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다”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적어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지분제한에 대해서는 노조와 의견이 일치한다.

1987년 민영화 계획 발표 후 98년 이전 정부는 8천2백92만주를 매각해 2조7천5백10억원, 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1억1천6백만주를 매각해 6조4천6백51억원의 재정수입을 올렸다. 정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인 KT 민영화를 통해 남은 지분 28.37%를 팔아 5조원대의 재정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승택 장관은 지난 2월 “손해를 보지 않고 매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값 못 받으면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마따나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가격에 정부 지분을 매각하고 ‘재벌 특혜’ 시비에서도 벗어나 ‘민영화 이후에도 지속적인 공익성 수행’이 가능한 초우량 기업으로 KT가 거듭날 것인지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출처: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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