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엔저 맷집' 생겨 … 주가 '상저하고' 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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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께 달러당 105~110엔까지 엔 약세 지속. 장기적으로는 달러당 120엔. 그러나 한국 증시엔 큰 영향 없음.’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엔저(円低) 시대 증시 전망을 이렇게 내다봤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 아래로 떨어진 것에 맞춰 중앙일보가 실시한 ‘금융시장 영향 점검 긴급 설문’에 대한 응답을 통해서다. 설문에는 교보·대신·아이엠투자·하나대투·현대·KDB대우 등 6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응했다.

장기적으로 달러당 120엔 갈 것

 엔화 약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데는 6개 리서치센터장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좀체 뚫지 못하던 ‘달러당 100엔’이란 심리적 지지선이 무너진 데다 일본이 여전히 돈을 풀어대고 있어서다. 11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인근 에일즈베리에서 폐막한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서도 엔저를 견제할 장치는 논의되지 않았다.

 대신증권 조윤남 센터장은 “엔화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전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2007년 엔화 값은 달러당 120엔대였다. 그러다 미국에서 주택대출 문제가 생기고 금융위기까지 일어나면서 70엔대까지 가치가 올랐다. 조 센터장은 “금융위기 직후의 엔화 강세는 일본 경제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미국 경제가 나빠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어 결국 종전 가격이었던 115~120엔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나대투증권 김지환 센터장, 현대증권 오성진 센터장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달러당 엔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14엔 떨어졌다. 이 추세라면 연말께 120엔에 다다른다. 그러나 리서치센터장들은 연말 환율을 105~110엔 정도로 봤다. 엔화 가치 하락 속도에 제동이 걸린다는 소리다. 엔화 가치가 계속 가파르게 떨어지면 원자재 수입이 많은 일본은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내수 비중이 큰 일본 경제에 결코 득이 아니다. 그래서 일본 스스로 엔화 하락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센터장들의 판단이었다.

 KDB대우증권 홍성국 센터장은 또 “일본은 국가부채가 엄청난 나라”라며 “일본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금리를 상당폭 올리는 일이 생기면 부채 부담에 허덕이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40%에 이른다. 미국은 약 100%, 한국은 40% 선이다.

 엔화 약세가 지속된다고 예상하면서도 국내 주식시장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6곳 중 5곳이 “연초 전망한 상저하고(上低下高·하반기에 주식 상승) 흐름과 코스피지수 최고치를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김지환 센터장은 “한국과 일본 모두 해외 생산이 많아 엔저 영향이 눈에 보이는 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내에서 제품을 생산해야 엔저 덕에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텐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엔저에 대한 국내기업의 맷집이 생각보다 세다는 뜻이다.

‘실적·저금리·미국’이 엔저 상쇄

 센터장들은 현재 과장돼 있는 엔저 영향이 하반기에 진정될 수 있다고 봤다. 반등을 예상하는 시점은 오는 7, 8월께였다. 상반기 실적 발표가 시작돼 국내 기업들이 엔저에 얼마나 버텼는지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때다. 물론 영향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저금리에 따른 주식 선호와 미국 경기 회복 같은 호재가 힘을 보태 엔저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반기가 되면 ‘실적·저금리·미국’이 ‘엔저 악재 지우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반기 코스피지수는 대체로 2200 정도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아이엠투자증권은 견해가 달랐다. 이종우 센터장은 “최근 코스피지수가 1950을 넘어서면 후퇴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상승을 가로막는 압력이 높아져 연초 전망한 코스피 고점 2200을 2050 정도로 낮춰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자동차 빼곤 엔저 큰 영향 없다

 업종별로는 자동차에 낀 먹구름이 짙었다. 국내 자동차 업체 수익성이 떨어지고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훨훨 날고 있다는 건 최근 실적 발표에서 드러났다. 올 1분기 현대차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15% 감소한 반면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2012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순이익은 1년 새 240% 늘었다. 그러나 자동차를 제외한 다른 업종에 대해서는 “큰 영향 없다”가 대세였다. 정보기술(IT)은 한국이 독보적이고, 조선·화학·철강 역시 주력 제품 분야와 시장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등치는 정책’ 더 문제

 정작 주식시장과 국내 기업이 걱정해야 할 일은 엔저가 아니라는 견해도 나왔다. 각국이 국수주의·민족주의 경제 정책을 펴는 것이다. 홍성국 센터장은 “금융위기 발생 후 세계 각국이 4년 넘게 노력했는데도 글로벌 경제는 아직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현상이 이어지면 각국이 “남이야 어찌 됐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으로 ‘이웃(교역 파트너)을 등치는 정책(Beggar-thy-neighbour Policy)’을 펼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환율 전쟁이 하나의 예다. 홍성국 센터장은 “앞으로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거세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권혁주·홍상지 기자

◆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국내 금융시장 전망

① 연말 엔-달러 환율
② 연말 원-엔 환율(100엔당 원)
③ 코스피 향후 동향
④ 투자 확대 유망 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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