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앤젤리나 졸리도 한국 살면 양악수술 감인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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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호 28면

외국계 홍보회사에 다니는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지인이 같은 직장의 한국인 남성과 외국 본사에서 온 남성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우연히 할리우드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 이야기가 나왔다. 그 한국 남성은 졸리의 외모가 싫다고 하면서 “턱이 너무 각졌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외국 남성이 이렇게 대꾸했다. “졸리를 볼 때 왜 턱을 봐요? 턱 말고도 볼 게 많은데?”

획일화된 성형

이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쳤다. 외국인이 종종 한국의 기현상으로 꼽는 ‘다 똑같은 얼굴로 성형하는 것’에 대한 한 가지 답이 여기에 있는 것 같아서다. 지난 3월 어느 여행사가 외국인 관광객에게 ‘이해할 수 없는 한국 문화’를 꼽아보라고 했을 때, 48%가 ‘획일화된 스타일의 성형’을 꼽았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헤어스타일만 다르고 얼굴은 복제인간처럼 똑같은 여성들을 묘사한 ‘강남미인’ 만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앞서 졸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 외국 남성의 말마따나 졸리는 턱 말고 볼 게 많다. 섹시하고 당당한 몸매,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는 커다란 청회색 눈, 여기에 도톰한 입술과 각진 턱이 어우러져 그녀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든다. 하지만 그녀가 한국에 있었다면 줄기차게 턱을 지적당하며 양악수술을 하라는 압력을 받았을 것만 같다.

한국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에 걸맞게, 외모에서도 튀는 특징은 단점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외모 향상은 개성 있는 장점을 살리는 방향이 아니라 ‘튀는 단점’을 죽여 무난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것을 따르다 보면 결과적으로 비슷비슷한 얼굴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재능 면에서도 유별나게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보다 원만하게 두루두루 해내는 사람을 선호했던 전통문화가 외모 선호 성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엔씨소프트 게임 ‘아이온’의 한 캐릭터.

하지만 이것만으로 획일화된 성형의 확산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인은 예부터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가? 일본식 정원과 다른 한국식 정원의 특징은 주어진 자연을 그대로 최대한 살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복제인간 같은 인공적 외모의 확산에는 다른 원인도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온라인게임 캐릭터 같은 디지털 이미지의 홍수가 아닌가 싶다.

최근 몇 년간 온라인 뉴스에는 이른바 ‘인형녀’들이 SNS에 올린 사진과 그들의 실물이 화제가 됐다. 인형녀들이 올린 사진을 보면 크고 동그란 눈, 도자기 같은 창백한 피부, 완전히 역삼각형인 뾰족한 턱 등이 게임 속 미녀 캐릭터나 구체관절인형을 꼭 닮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얼굴이 ‘포토샵’이어서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었다는 기사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인형녀들 사진을 주변에 보여주었을 때 반응이 나뉜다는 것이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나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쁘기는커녕 무섭다” “포토샵이 아니었다면 그게 더 충격과 공포였겠다”라고 한다. 그 ‘무섭다’는 것은, 사람 같지 않은 인공적인 느낌에서 오는 언캐니(uncanny)한 기분일 것이다. 반면에 게임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예쁘긴 하네…”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인공적 미녀 이미지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미녀 이미지는 일종의 시뮬라크르(simulacre)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던, 이상적인 실재 이데아(idea)의 질 낮은 복제 이미지로서의 시뮬라크르가 아니다. 현대 프랑스 사상가인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실재를 압도하며 실재를 대체하는 가상 이미지 시뮬라크르다. 컴퓨터 기술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광고 속 모델의 이미지도 실재가 아닌 시뮬라크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뮬라크르는 자가복제, 증식하며 실재를 시뮬라크르로 대체한다. 현실의 사람들이 게임 캐릭터처럼 또는 포토샵으로 보정된 모델 이미지처럼 성형수술을 해서 스스로 시뮬라크르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의 획일화된 성형의 확산 뒤에는 개성을 단점으로 여기는 전통 의식과 첨단 디지털 시뮬라크르의 지배가 묘하게 결합돼 있다. 그 끝은 어디일까? 그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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