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더 관여할 부분 없어”…“국무부는 이번 조사와 무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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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과 자국 정부는 무관하다고 재빨리 선을 그었다. 이번 사건의 외교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사건 수사에 나선 워싱턴DC 경찰 역시 말을 아끼고 있다.

미 국무부 당국자는 11일 “미 국무부는 이번 조사와 관련성이 없다. 한국 정부나 워싱턴DC 경찰 당국에 물어봐라”고 했다. 윤 전 대변인이 출국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협의 절차를 밟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을 일축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 8일 최영진 주미대사에게 “윤 대변인을 조사해야 한다”며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워싱턴 경찰이 이날 피해 여성의 신고를 받고 호텔로 출동해 그의 진술을 확보한 뒤 이뤄진 조치였다. 하지만 워싱턴 경찰은 “현재 성추행 신고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더 말할 게 없다”며 언급을 꺼리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와중에 청와대 고위 당국자가 연루된 사건인 만큼 외교적 문제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우리 외교 당국도 선 긋기에 나섰다.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은 11일 오전 TV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에 외교부가 더 관여할 부분은 없다. 다만 미국 수사 당국이 협조를 요청해 오면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워싱턴 경찰이 수사는 계속하되 경범죄 사안임을 이유로 한국에 윤 전 대변인 인도 요청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박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대북 문제 공조를 재확인했고 미국의 외교 현안인 시리아 시민군 지원 문제에서 한국의 협조를 약속받은 만큼, 그런 성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선 개인적 차원 사건으로 선을 그은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 역시 윤 전 대변인이 미국 영토에서 직무 중인 시점에서 사건이 터진 만큼 정부 차원에서 사건에 개입하면 정치·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신속하게 선 긋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동북아 최초 여성 대통령의 첫 방미에 고무됐던 200만 재미동포 사회가 받은 충격도 크다. 김영근 전 워싱턴한인회장은 “그동안 크게 개선된 한국의 이미지가 이번 사건으로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교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들도 이번 사건을 자세히 보도했다. CNN방송은 “호평으로 언론을 장식하기를 희망한 박근혜정부에 이번 사건보다 더 창피한 일은 없을 것”이라며 “(한국 언론은) 한·미동맹 60주년 대신 윤 전 대변인의 추문으로 도배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이른바 ‘윤창중 스캔들’이 미국 방문에서 매끄러운 성과를 거둔 박근혜 대통령에게 타격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2년 전 뉴욕에서 터진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성폭행 사건과 이번 사건을 대비해 보도하는 매체도 많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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