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내화벽돌 바꾸다, 협력사 직원 5명 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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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기업 사업장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근로자가 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사고가 난 대기업은 감독기관에 이 같은 사실을 늑장 보고했다. 고용노동부는 원·하청업체에 대한 특별감독 실시를 검토 중이다.

 고용노동부와 당진경찰서에 따르면 10일 오전 1시45분쯤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에서 전로(轉爐) 보수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한국내화 직원 이모(42)씨 등 5명이 숨졌다. 전로는 고로(高爐)에서 나온 쇳물의 불순물을 제거해 강(鋼)을 만드는 설비다. 숨진 근로자들은 지름 8m, 깊이 12m의 항아리형 전로 안 내화벽돌을 교체하다 질식해 쓰러졌다. 쇳물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쓰이는 아르곤 가스가 새어 나온 게 원인으로 알려졌다. 아르곤 자체로는 해가 없지만 산소보다 무거워 밀폐된 공간에선 산소를 밀어내고 바닥에 쌓인다. 현대제철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감전사고인 줄 알았지만 산소 농도를 측정해 보니 기준치인 18%에 못 미치는 14~16%였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이씨 등이 전로 아래로 3~4m가량 내려간 뒤 의식을 잃었다고 밝혔다.

 현대제철 측은 오전 2시쯤 사고 사실을 알고 근로자들을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모두 숨졌다. 회사는 오전 5시쯤 고용부 천안지청이 먼저 확인 전화를 할 때까지 사고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 회사 측이 팩스(FAX)로 정식 보고를 한 시각은 오전 6시37분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즉시 고용부에 알려야 한다. 유가족 대표 홍모(39)씨는 “이번 사고는 회사 측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안 해 발생한 인재”라고 주장했다. 홍씨는 “보수작업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가스배관이 연결됐고, 작업 시작 전 전로 내 산소 농도 측정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고용부와 경찰은 가스 누출 경위와 회사의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조사 중이다. 고용부 박종길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사고 장소는 밀폐된 곳이라 원청업체에 관리 책임이 있는 곳”이라며 “원·하청업체에 대한 특별감독 실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한별 기자, 당진=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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