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도덕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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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달라졌다. 어제의 물가로 오늘의 물건을 살 수 없다. 신정연휴를 틈타, 물가는 기습작전이라도 편 것 같다.
실은 「기습」이 아니다. 이유있는 인상이다. 세율이 신년부터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기습인상」이다. 세율의 어머니격인 국가예산이 그런 식으로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물가도 결국은 기습을 하고 말았다. 모두 시민이 쿨쿨 단잠을 자고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불침번이라도 서야 하겠는가.
상인만 욱박지를 수는 없다. 장사는 장사지, 사회사업은 아니다. 상인에게 물건을 싸게 팔라고 삿대질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타박이다. 사회의 「무드」가 온통 「인상·인상」인데 상인의 등허리가 가렵지 않을 리 없다.
국가의 정책가들은 바로 그 「무드·메이커」들이다.가슴이 뜨끔하는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공공요금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가령 철도요금이 50%나 인상되었지만, 그 후에 철도「서비스」는 얼마나 개선되었는가. 「버스」요금도 꼭 마찬가지이다. 전화값이 금송아지 값으로 오른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석유값의 인상과 연료의 현대화와는 무슨 장관이 있는가. 담배맛은 과연 얼마나 향기로와 졌는가. 전기요금과 형광등의 깜박깜박은 또 어떻게 해명을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상인의 도덕감만을 호소할 수는 없다.
2차대전 이후 독일의 국민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가죽옷(피혁의류)을 즐겨입은 것은 두고두고「개발도상국민」들의 교훈으로 남는다. 그들의 근검은 번영의 여명이었다. 독일 국민들은 국가를 신뢰하고 있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그 신뢰에 보답하는 도덕감을 언제나 잃지 않았다. 「유럽」의 생활형은 아직도 보수적이다.
그들은「올드·프로덕츠」(구형제품) 를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 「뉴·프로덕츠」에 민감한 미국인들과는 판이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 「유럽」의 생활이 언재나 안정을 구가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신뢰위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경제와 「유럽」의 그것과는 물론 「패턴」이 다르다. 그러나 신뢰감은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새해의 문턱에서 벌써 국민은 실의를 맛본다. 술이라도 마시고싶은 기분들이다. 그러고보니 술값도 80%나 올랐다. 이 마음을 누가 달래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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