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배우는 경제용어] 6. 상호 보완재

중앙일보

입력

겨울잠에서 깨어난 야구장에 팬들의 함성이 뜨겁다.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온 프로 야구는 올해로 22년째 시즌을 맞았다. 올해는 경기제도를 바꾸고 구장 시설도 업그레이드해 팬들이 보다 안락한 분위기 속에서 즐겁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변경된 제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트라이크 존 변경과 외국인 선수 수 및 교체 횟수의 제한이다. 여기에 잠실 경기장의 대대적인 시설 보완과 인천 문학경기장의 개장을 들 수 있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올 시즌부터 타자의 무릎과 허리띠 사이로 인정하던 스트라이크 존의 높이를 야구 규칙에 있는 대로 ‘무릎 밑부분에서 허리띠와 어깨선 중간의 선’까지 약 15cm 공 2개 정도 높게 적용키로 했다. 스트라이크 존의 확대로 투수들이 유리해져 경기시간 단축은 물론, 게임의 불확실성을 높여 팬들에게 재미를 배가시켜 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 용병은 국내 선수들에게 자극제

여기에다 잦은 용병 교체와 이에 따른 외화 낭비를 막고자 외국인 선수 교체는 시즌당 1회로 제한했다.

현재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는 야구뿐만 아니라 농구, 축구에서도 외국인 선수들이 코리안 드림을 꾸면서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그들의 멋진 플레이는 관객에게 커다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의 활약 여부에 따라 경기 내용이 바뀌고 승부가 좌우되는 현상 또한 비일비재하다. 팬들은 스포츠의 묘미를 만끽함은 물론, 관중 수 증가에도 일조를 가져왔다. 경제학 입장에서 보면, 관전 스포츠라는 상품의 질이 그들에 의해 향상된 셈이다.

하지만 구단의 무분별한 선수 교체, 외국인 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 용병선수들의 막무가내식 행동 등은 늘상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 외국인 선수에 투자할 돈으로 국내 선수육성, 시설 개선, 편리한 서비스 제공 등에 신경을 쓴다면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프로 스포츠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종합적인 문제가 극명하게 표출된 사건이 지난해 말 프로 야구 플레이오프전을 앞두고 발생했던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에 의한 플레이오프전 보이코트 사건이었다.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경제학 측면에서 해석해 보자. 우수한 외국인 선수를 1명이라도 더 확보한 팀이 경기 승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또 팀 전체적인 전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데다 수입 증대로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선수에게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국내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두산의 우즈, 롯데의 호세, 현대의 퀸란 선수 등을 예로 들면 쉽게 이해가 된다. 또한 외국인 선수는 구단간 전력 평균화에도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다. 전력이 약한 구단일수록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이들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 수를 늘이는 쪽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선수가 너무 적어도 혹은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생각이다.

그러면 적정 외국인 선수가 몇 명인가 분석해 보자. 두 명 보유를 주장하고 있는 선수협은 4가지 이유를 들어 외국인 선수 수 제한을 주장하고 있다. 첫째, 대학을 졸업하는 야구선수 중 90%가 실업자가 되고 있다는 현실을 든다. 둘째, 아마추어 야구가 활력을 잃은데다 어린 아마추어 선수들이 특정 포지션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이 국내 선수들 보다 비싼데 성적은 오히려 못한 경우가 있다. 마지막으로 구단이 단기적인 성적 올리기에만 급급해 외국인 선수를 무분별하게 스카우트 했다가 퇴출시키는 행위 등을 들 수 있다.

위의 4가지 이유 중 대졸 실업자 선수의 증가와 아마 야구의 침체, 외국인 선수 수와의 관련성에 대해 경제학으로 설명해 보자. 첫째, 대졸 야구 선수 중 90% 이상이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의 원인을 냉정히 분석해보자. 각 프로팀 당 1명이면 8개 구단에 8명인 외국인 선수가 추가된다.

대졸 야구선수 실업자가 증가했다면 8명이 증가해야지 90% 이상이라는 주장은 과장됐다. 오히려 대졸 야구 선수 실업자 증가에는 ‘학습 효과’로 인한 우리 프로 야구의 수준 향상이 더 큰 원인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경제학 측면에서 ‘학습효과’란 누적 생산량 증가에 따라 개인이나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는 현상을 말한다.

▶ 한번 투수는 영원한 투수

프로 야구가 20여년 동안 발전해 오면서 선수들은 프로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한 노하우를 연마하게 됐다. 철저한 사생활 관리와 노련한 경기 운영, 착실한 운동 등으로 모든 프로선수들이 프로정신을 몸에 익혔다. 그 결과 신인 및 기존 선수간의 기량 차이가 더 커지고 있다. 대졸 야구선수의 입장에선 설자리가 없어지며 프로의 벽은 높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 선수들의 선수 생명이 길어져 예년 같으면 은퇴할 선수가 여전히 아들 같은 선수와 함께 뛰고 있는 사실도 신인 선수에게 커다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올해 프로야구 신인 선수 중 투수를 제외하고는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대졸 야구선수 실업자가 증가한 것은 20년 간 프로 야구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로 인해 출중한 선수 몇을 제외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없어진데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 때문에 실업자가 되는 사람이 있지만 선수협의 주장만큼은 아니다.

아마추어 야구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용병 선수 증가 그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보완적 관계에 있는데다 아마 선수는 프로 선수의 수직적 공급원이다. 자동차 회사를 예로 들면 아마추어 야구는 엔진공장, 프로야구는 자동차 조립 공장에 비유할 수 있다. 장기적인 수직 보완 관계가 추가로 늘어난 외국인 1명 때문에 흔들렸다는 주장 또한 과장된 측면이 있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특정 포지션을 기피한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 이유는 노동의 대체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야구는 다른 운동보다 전문성이 잘 돼 있어 선수들 간의 대체성이 타 종목에 비해 적다. 반면 축구에서는 11명 선수 모두가 포지션에 관계 없이 공수를 소화할 수 있는 ‘토털 축구’ 라는 개념이 가능하다.

유상철 선수가 공격수는 물론 수비수로 기용되고 있는 예에서 쉽게 알 수 있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 나이가 들면서 다른 포지션으로 옮겨가는 예도 흔히 볼 수 있다.

90년대 아시아 최고의 윙 플레이어였던 김주성 선수도 은퇴 무렵에는 수비수로 전향했다. 한국 프로 축구 최고 득점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현대의 김현석 선수도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향했다.

야구에서는 포지션별로 전문성이 강해 이런 일이 휠씬 적게 일어난다. ‘토털 야구’ 같은 개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구별은 물론 투수 중에서도 선발·중간계투·구원투수로 역할이 구분된다. 내야수에서도 포지션에 따라 역할이 크게 다르다.

만약 우수한 외국인 선수가 1루를 맡고 있다면 같은 팀에 있는 국내 1루수 선수는 자기 포지션이 없어진다. 2루수 또는 3루수로의 전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쉽지가 않다. 기존 선수가 이런 형편이니 신인 선수는 발 붙일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

초등 및 중고등학교 때는 4번 타자 겸 투수가 가능하지만 프로에 입문하면 한번 투수는 영원한 투수일 수밖에 없다. 선동렬 선수는 영원한 투수요, 이만수 포수는 영원한 포수다. 만능 선수라고 칭찬받던 심재학 선수가 투수와 타자를 오가다가 결국 타자만 하기로 결정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 부담으로 포지션을 옮기는 경우가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이종범 선수가 유격수에서 외야수로, 유격수 장종훈 선수가 1루수로 바꾸는 경우에서 보듯 아주 우수한 몇몇 선수의 경우에서만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그까짓 외국인 한 명이라고 보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용병 선수 수입을 왜 국내 선수들이 생존의 문제로 느끼는지를 노동의 전문성, 대체성, 보완성, 수직적 관계 등 경제학 용어를 통해 분석했다. 외국인 선수의 수입은 대체성으로 분석할 때 선수협의 주장 중에는 일부 설득력 있는 주장도 있지만 과장된 측면도 있다. K

BO 또한 선수들 입장을 수긍, 외국인 선수 제도를 일부 개선해 프로야구의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했다. 무엇보다 보완관계에 있는 프로 야구와 아마 야구, 외국인 및 국내선수를 아우르는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iweekly 임상일 대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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