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배우는 경제용어] 1. 경제적 유인과 기회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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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 유망주 이천수 선수가 대학을 중퇴하고 울산 현대 프로 축구팀에 입단했다. 대우는 신인 계약금 연봉의 최고액에다 현대가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좋은 고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3일 동안이나 교육청 앞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의 최종 목표가 명문대 입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천수의 중퇴는 사치로까지 비친다.

이천수처럼 대학을 중퇴한 스포츠 스타는 미 프로야구인 메이저리그에서 활동 중인 박찬호, 김병현, 최희섭, 김선우 등을 들 수 있다. 대학에 적조차 두지 않았던 스타로는 국내 프로 축구선수로 활약 중인 최태욱, 고종수, 이동국 등을 꼽을 수 있다.

과거 개발 경제시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기 전에는 우수 스포츠 스타들은 대부분 명문대학 출신이었다. 실업팀에 적을 두고 있다가 대학으로 늦게 입학하는 예도 많았다. 지금의 스타 플레이어와 정반대의 길을 간 셈이다,

▶ 아버지의 대학진학 권유 거부한 이승엽

우수한 선수들이 선배들처럼 명문대에 입학하지 않고 곧바로 비정한 프로 세계로 들어가는 이유는 뭘까. 과거 스타 선수들은 대부분 일찍 은퇴하는 소위 조로(早老) 현상이 심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그런 일을 부상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경제학으로 풀어본다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다.

이 질문은 ‘경제적 유인’과 ‘기회비용’ 개념을 이용해 설명할 수 있다. 기회비용이란 어떤 것(프로 선택)을 얻기 위해 포기한 다른 선택(대학 진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말한다.

새 애인과 사귀기 위해 지금 애인과 헤어져야 한다면 지금 애인과의 추억이나 이별로 인한 상처가 새 애인과의 사귐으로 인한 기회비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회비용이란 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프로 스포츠가 생기기 전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가 극심했던 시절에는 대학 진학이 선수 자신에게 큰 메리트가 되었다. 고졸자로 실업팀에 가서 얻는 4년간 소득이 대학 진학의 기회비용이었지만 대졸 후 얻는 수입이 이것을 능가했다. 또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아 우수 선수 대부분이 대학으로 진학했다.

80년 대졸자와 고졸자의 학력간 총 임금 격차는 상당한 수준이어서 고졸 남자의 임금을 1백으로 볼 때 대졸자는 1백90이었다. 대학 4년간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대학 졸업 후 임금 격차가 커 4년간 손해를 만회하고 남을 정도였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가 생긴 이후에는 얘기가 1백80도 바뀌었다.

프로 세계는 능력에 따른 소득이 보장되는 인센티브 제도가 정착돼 우수 선수의 대학 진학에 대한 기회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당장 주전은 못 꿰찬다고 해도 4년간 매일 2군 시합을 뛰는 것이 기량 향상과 연봉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4년 이전에 주전이 되면 당장 연봉이 크게 상승할 것은 물론이다. 아버지의 대학 진학 권유를 어기면서 프로로 직행한 홈런 왕 이승엽이 그 좋은 예다.

그가 고등학교 졸업 후 4년간 받은 연봉의 합, 2억1천만원은 가시적으로 나타난 대학 진학 기회비용의 일부다. 정확하게 그의 기회비용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4년간의 연봉에다 기량 저하에 따른 대학 졸업 후의 수입 감소도 포함돼야 하므로 정확한 계산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승엽이 대학에 진학했다면 과연 오늘과 같은 국민타자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가정해 본다면 그에게 있어서 대학 진학의 기회비용은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것이다.

프로 스포츠가 없을 때 30살이 된 선수는 더 이상 선수 생활의 매력을 못 느끼고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조로현상이라고 한다. 아마추어 축구만 있던 시절 서른살 된 축구선수가 있다고 하자.

그가 계속 선수로 축구를 할 것인가 아니면 은퇴를 하고 은행원 업무를 익히는 것이 유리한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계속 선수로 뛰는 경우 추가적으로 얻는 것은 거의 없다. 우승을 했다고 해도 약간의 보너스는 기대되지만 그렇게 큰 메리트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 농구의 정은순·전주원, 주부 불구 ‘펄펄’

반면 은행 실무를 익힐 기회가 늦어질 뿐이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운동선수를 하지 못할 바에 하루라도 빨리 축구를 그만두고 업무를 배우는 것이 자신의 미래 소득을 향상시키는 길인 것이다.

아마추어 선수가 운동을 계속하는 경우의 기회비용은 나이가 들수록 급상승한다. 빨리 은퇴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서른살 된 프로 축구선수가 운동을 계속하면 얻는 것은 상당한 연봉인 반면 은퇴하면 곧바로 실업자가 되든가 코치가 된다고 해도 선수 시절보다 적은 연봉을 받게 된다.

프로 선수의 기회비용은 은퇴(예컨대 37세)까지의 연봉의 합계와 현재 가치를 합한 금액이다. 일년이라도 더 뛰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아끼고 기량을 향상시켜 선수 생활을 연장하려고 한다.

유능한 선수일수록 자연스럽게 한 시즌이라도 더 뛰려고 한다. 선수들이 나이 들어서도 은퇴를 거부하고 선수 생활을 고집하는데는 경제적 요인 이외에 다른 요인들도 작용한다. 기록 도전이라든지 자기의 역량을 좀 더 보이고 싶은 욕망 등도 있으나 경제적 요인보다는 적다.

은퇴에 대한 프로 선수의 기회비용은 아마추어 선수보다 휠씬 크기 때문에 아마추어 시절에 보이던 조로현상은 프로세계에서는 자연히 없어진다. 그래서 프로 여자 농구장이나 배구장에서 과거 같았으면 벌써 은퇴하여 잊혀진 스타였을 삼성의 정은순, 현대의 전주원 같은 주부 선수들이 펄펄 날고 있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컨대 20살 된 보통 젊은이의 군 복무 기회비용은 26개월간의 고졸 월급의 합이다. 그러나 프로 선수인 경우 그 기간 동안의 연봉은 물론 군 복무 기간동안 기량 저하로 인한 손해까지 기회비용이 된다.

프로 선수의 군 복무 기회비용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크며 눈에 띄게 나타난다. 그래서 그들은 가끔 국방의 의무를 피하려고 부도덕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따라서 프로 선수의 불법 병역기피를 없애려면 해당 선수에 대한 엄벌은 당연하지만 제도적인 개선을 통해 그들이 범법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보다 어릴 때 운동을 배워라’. 이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운동 생리학적으로 볼 때 어릴 때 몸이 유연하여 운동의 효과가 확실하고 지속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어릴 때 운동은 나이 먹어서 하는 운동에 비해 기회비용이 적다.

어린 시절에는 여유 시간이 성인일 때 보다 많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축구 시합을 한 경우(평일 날) 손해보는 것은 영어 단어 몇 개일 텐데(이것이 기회비용) 이 정도는 한두 시간 열심히 단어를 외우면 쉽게 만회할 수 있다.

40살이 넘어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이 평일에 한가하게 축구 시합을 할 수 있겠는가. 그의 기회비용은 영어 단어 몇 개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기회비용은 더 크다.

과거와는 달리 우수 선수들이 대학보다 곧바로 프로 세계로 뛰어드는 까닭은 신세대 선수들은 학구열이 약하고 과거 2, 30년 전 선수들은 학구열이 높았기 때문이 아니다.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대학 4년 동안의 기회비용이 상승한 것이 그 이유다. 그야말로 실력으로 승부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학력, 학벌은 그렇게 탐나는 것이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프로에 입문, 기량을 쌓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기 종목의 대학 스포츠는 자연히 위축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고졸 스타가 부쩍 늘고 있는 것은 선수들이 ‘경제적 유인제도와 기회비용’을 정확히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입사 후 적당히 몇 년 뛰다가 하루라도 빨리 은퇴해 직장 일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선수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이었다.

해서 남자선수의 경우 30세, 여자선수의 경우 25세를 전후로 은퇴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프로화가 된 후에는 좀 더 젊은 나이에 입단해 조금이라도 늦게 은퇴하는 것이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이 되었다.

출처:iweekly 임상일 대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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