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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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애의 온도`에서 영과 동희가 웃고 울던 놀이공원 경주월드. 경북 경주 보문단지에 있다.

이상하게 어린이날에 관해서는 별로 추억이 없었다. 어딘가 가긴 간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기억일수록 계기만 있으면 봇물 터지듯이 되살아나는 법이다. 그 계기가 얼마 전 찾아왔다. 엉뚱하게도 로맨스 영화 ‘연애의 온도’를 보면서였다.

지난 3월 21일 개봉한 이 영화는 미련을 남긴 채 헤어진 사내 커플의 후일담을 그린다. 뜨겁고, 차갑고, 또 뜨뜻미지근한 연애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약점을 안고도 개봉 두 달 만에 관객 200만 명을 그러모았다. 주인공 영(김민희)과 동희(이민기)가 하필 비 오는 날 놀이공원 데이트에 나선 장면이었다. 영화 속 장소가 왠지 눈에 익다 했더니 어릴 적 곧잘 놀러 갔던 경북 경주의 경주월드(www.gjw.co.kr)였다.

경주월드는 경상도에선 제법 알아주는 명소다. 놀이공원 치고 역사도 오래됐다. 1985년 ‘도투락월드’로 문을 열어 92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워터파크와 수련원을 뺀 놀이공원만 26만㎡(약 8만 평). 남부지방 놀이공원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2007년에는 레일 위가 아니라 레일 아래에 매달려서 달리는 ‘인버티드 롤러코스터’를 국내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지금도 놀이공원 매니어는 경주월드 롤러코스터를 손꼽히는 명물로 친다.

벚나무가 우거진 보문단지 안에 있어서 경주월드는 해마다 상춘객 수도 엄청났다. 꽃 마중을 나온 인파와 연분홍 꽃비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는 했다. 어린이날 인파는 말도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속엔 우리 가족도 있었다.

미어터지는 어린이날의 놀이공원에서 부모님은 늘 일사불란하셨다. 아버지가 놀이기구 앞에 줄을 서면 어머니는 나와 내 동생에게 점심을 먹이고는 공원 곳곳을 구경시켜줬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부르면 우리는 단숨에 긴 줄을 헤치고 맨 앞에 선 아버지에게로 달려가, 보란 듯이 놀이기구에 올라탔다. 그럼 아버지는 또 다음 놀이기구로 줄을 서러 가셨다. 종일 몇 번이고 그걸 반복했다.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인간의 기억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한편으론, 철이 들면서 부끄러운 기억을 무의식 중에 지워낸 게 아닌가도 싶지만…. 중요한 건 그 모든 기억이 선명해진 ‘지금’부터가 아닐까.

‘연애의 온도’의 놀이공원 장면에는 경기도 파주 하니랜드(honey-land.co.kr)도 일부 등장한다. 영과 동희가 어정쩡하게 우산을 쓴 채 꼬마열차를 타는 장면과 몇몇 말다툼 장면을 하니랜드에서 찍었다.

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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