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도 사내 생산성 향상, 사외 그늘진 곳 껴안기 병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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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배상호 LG전자 노동조합 위원장이 노조의 사회적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LG전자 노조]

‘최고 품질은 조합원 손끝에서’ ‘품질로 한판 붙자’.

 일반적인 업체라면 연구개발(R&D) 센터나 품질관리 담당 부서에 붙어 있을 만한 이런 격문이 LG전자에서는 노동조합 사무실에 붙어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LG전자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배상호(50) 위원장은 “품질관리 활동은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하는 투자”라고 강조했다. 생산성과 제품 품질을 높이면 그만큼 회사의 실적이 좋아지고, 결국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진다는 논리다.

LG전자 노조의 품질관리 활동은 2010년 말 국내 최초로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을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배 위원장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CSR)을 생각하는 것처럼 노조도 사내에서의 생산성 향상과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듬는 대외활동을 함께한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USR을 시작한 이후 LG전자 제품에서 나사 못으로 인한 불량품 발생률이 ‘0’이 됐다. 나사 못 불량의 대부분은 비스듬히 박히는 과정에서 생기는데, 이를 눈여겨본 한 조합원이 90도 상하로만 정확히 움직이는 드릴을 창안해 생산라인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폐가전에서 부품을 분리하는 한 사회적 기업은 업무 효율이 낮아 밀려오는 폐가전을 쌓아둘 공간조차 없을 정도로 애를 먹었다. LG전자에서 이 회사에 지원금을 주는 것과 동시에 노조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노조원들은 현장을 둘러보고는 작업장 환경에 꼭 맞는 컨베이어 벨트를 설계해줬다. 분리된 금속 부품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컨베이어 아래에 자석도 넣었다. 덕분에 이 업체의 생산성은 40% 높아졌다. 노조의 지원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이 회사 직원들은 “앞으로 LG전자 제품만 사겠다”며 수차례 감사를 표했다.

 LG전자 노조는 최근 USR의 해외 전파에 나섰다. 전 세계 32개 생산법인의 생산량이 국내보다 많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엔 브라질 공장에 품질 개선 활동을 접목했다. 작업자 책상에서 부품이 떨어지지 않게 보호막대를 덧대는 등 작은 아이디어를 보탰다. 노조 집행부가 다녀간 후 현지 노조에서는 “우리는 가족”이라며 USR 참여 의사를 보내왔다. 전자 노조의 이런 활동은 디스플레이·이노텍·시트론 등 다른 LG 계열사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달 12일 이들 4개 사 노조 집행부는 함께 에티오피아 출장을 다녀왔다. 배 위원장은 “앞으로 4개 노조가 오지 주민들을 위해 우물을 파고 학교를 지어주는 활동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노조의 USR은 정부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배 위원장은 올 3월 국회 정책토론회에 초청돼 USR 도입 취지와 실행 사례를 설명했다. 2011년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이 LG전자 노조 활동을 경영 성과와 연결해 분석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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