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오판이 빚은 중대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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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준결승 1국>
○·박정환 9단 ●·구리 9단

제10보(104~110)=361로 바둑판은 ‘끝 없는 선택’을 요구합니다. 제아무리 고수라 하더라도 오판이 없을 수 없지요. 문제는 바로 그 오판이 승부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입니다. 바둑을 ‘실수의 게임’이라고 부르는 이유지요.

 전보 마지막에 둔 백△가 중대한 오판이었습니다. 박정환 9단이 그 수를 두자 구리 9단은 거의 노타임으로 흑▲로 씌웠는데요, 백의 모습이 척 봐도 무척이나 답답하지 않습니까. 탈출의 급소는 ‘참고도’ 백1이었습니다. 백3 자리가 항시 선수인 만큼 마늘모가 아니라 이렇게 붙여야 했던 겁니다. 해서 5의 호구로 부풀려 전진하면 꽤 탄력 있는 모습이어서 공격이 쉽지 않습니다. 흑도 A 쪽의 약점에 신경 많이 써야 합니다. 박정환 같은 실력자가 왜 이런 쉬운 맥을 놓쳤느냐고요? 그게 미스터리입니다. 기량 문제는 아니고 대국심리 탓이겠지만 고수들도 가끔은 턱 없이 빗나갑니다. 제아무리 뛰어나도 완벽은 없는 거지요.

 104, 106, 108로 뚫고 나갑니다. 좌충우돌의 힘겨운 모습이긴 하지만 그래도 힘으로 포위망을 뚫고 나갑니다. 106이 듣고 있어서 흑도 끊을 수는 없지요. 그러나 109로 꽉 잇는 구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마치 덫에 걸린 맹수를 지긋이 응시하는 듯합니다. 110으로 훌쩍 뛰어나갔습니다. 하도 자세가 시원해서 지금껏 괜한 걱정했구나 싶었습니다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백은 아직 탈출한 게 아니었습니다. 흑이 준비해둔 강습은 무엇일까요.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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